안전 운전하세요!

by 감자도리

안전 운전하세요!


어쩐 일인지 아침에 무려 1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고작 10분일 뿐인데 이렇게 여유로운 아침을 즐길 수 있다니. 거울 앞에서 멋내기용 옷을 생각하고 입을 시간이 있다니. 8:30 맞춰놓은 알람이 울렸다. 동시에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한 월요일이다.


차의 시동 소리가 경쾌하게 울린다. RPM이 1까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안전 운전하세요!’ 발랄하게 나를 다독여주는 블랙박스부터 때맞춰 흘러나오는 출근 노래까지. 가벼운 월요일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갑자기 묵직한 기분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불안한 기분이 고통으로 바뀌기까지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좌회전 신호가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는데 내 장기 신호는 점차 주황색에서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면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데 왜 내 아랫배는 조절이 안 되는 걸까. 왜 내 몸에는 물리적인 브레이크가 없는 걸까. 아침엔 쌀쌀하니까 점퍼까지 걸치고 나왔는데 갑자기 더운 기운이 몰려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목이 점차 끈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모든 게 괜찮았던 아침이었는데! 심지어 월요일 패션룩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까지 있던 아침이었는데! 왜 갑자기! 이 상황에서! 배가 아플 수 있는 거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배가 아파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늘 차가 밀리는 구간이 뚫려 있었다. 조금 더디게 나갈 수 있지만 평소의 아침처럼 밀려 있지는 않았다. 브레이크를 밟은 다리가 달달 떨렸다. 뒤에서 오는 차는 나의 새빨간 브레이크 등이 마치 클럽의 조명처럼 깜빡거리는 걸 보았을 것이다.


회사까지 약 8개의 신호가 있는데 운이 좋으면 1~2개 정도에서 잠시 걸렸다가 그대로 갈 수 있다. 이제는 운에 맡겨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달달 떨리는 다리로 브레이크와 엑셀을 번갈아 밟으며 목적지까지 안전 운전하는 것뿐이므로.


생체신호는 간헐적인 주파수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다만 눈물이 날 만큼 슬펐던 부분은 주파수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뱃속에 시한폭탄을 들고 시속 50km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온 우주의 감각이 아랫배와 엉덩이를 지배한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정말 차에서 당장이라도 뛰어내리고 싶었다.


회사까지 15분. 딱 15분만 견디면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한 채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다. 갑자기 잘 가던 앞의 차에 브레이크 등이 새빨갛게 들어왔다.


비상! 비상! 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더 내 몸을 자극했다. 빠른 리듬에 맞춰서 생체 신호가 두둥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신호등이 뿜어내는 빨간빛이 경광등처럼 돌아갔다. 앞으로 20초만 있으면 다시 초록 불이 들어온다.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아뿔싸! 이 구간은 교차로라 다른 차들의 좌회전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말 죽겠다. 이때만큼은 지난 10년간 하느님의 눈길을 저버린 나를 회개하며 그분의 은총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아! 하느님! 이번만 잘 넘기게 되면 정말 성당 열심히 나갈게요!


자판기처럼 하느님을 찾아서 그런가. 괘씸죄까지 더해져서 배에서 망나니가 춤을 추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순간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고 나는 카레이싱 선수처럼 액셀을 밟아댔다. 마치 오락실에 있는 자동차 오락기처럼 차선을 마구 바꿔대며 시속 50km로 분노의 질주를 했다.


드디어 도착한 회사 앞. 이 길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그린란드를 향하는 길보다 멀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신을 마주한 광신도처럼 내 배가 광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차를 서둘러 대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근처럼 뽑아 올리고 차에서 내렸다.


계단을 2개씩 오르며 3층 사무실에 도착했다. 피 안에 흐르고 있는 유교 정신은 월요일 굿모닝 인사를 잊지 않았다. ‘안녕하십니깍!’ 외치며 서둘러 가방을 던지고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은 유목민처럼 화장실로 향했다.


심 봉사가 눈을 떠도 이것보단 시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의 고요와 신체의 안정이 나를 감쌌다. 마치 공중 부양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너무나 호탕한 시간. 한계 없이 치솟던 생체 주파수가 다시 평정을 찾았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 운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