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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Nov 03. 2019

싸이보그지만 물론 괜찮아!

소중한 타자성

박찬욱 감독 영화 중 가장 혹평도 많고,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이다. 난 정말 좋았다. 타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정말 이상적이고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라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공격함

영군(임수정)은 자신이 사이보그라 생각하는 망상에 빠져 있다. 사랑하는 할머니를 앰뷸런스로 끌고 간 하얀맨(=의사)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다. 자신을 사이보그로 여기는 만큼, 영군의 세계관은 마치 만화 속 같다. 손에서 총알이 나온다거나, 날아다닌다거나. 하지만 영군은 매번 하얀맨을 처치하는데 실패한다. 그 이유는 '하얀맨들에게도 할머니가 있으면 어쩌지?' 하는 동정심 때문이다.


No sympathy

순수하고 착한 영군은, 흔들릴 때마다 싸이보그에게 금지된 칠거지악을 되뇌인다.

1. 동정심 금지
2. 슬픔에 잠기는 것 금지
3. 설렘 금지
4. 망설임 금지
5. 쓸데없는 공상 금지
6. 죄책감 금지
7. 감사하는 마음 금지


이 칠거지악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어쩌면 현대 사회 속 모두가 싸이보그의 감정을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해내야 한다. 거대 조직에 의한 동기를 부여받고, 모든 활동은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적 목적에 종속한다. 수단은 목적이 되었다. 사실상 현대 사회는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에 표현된 슬로건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 '개인이 감정을 가질 때 공동체는 비틀거린다.'


밥 말고
충전 중

영화의 주제는 '영군 밥 먹이기'이다. 자신이 싸이보그라 믿는 영군은 밥을 먹지 못하는 문제에 있다. 충전해야 한다 믿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며칠 내에 아사하게 될 위험에 처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일순(정지훈)이다. 하얀맨은 영군을 병명에만 가두고 분석하고 교정하려 한다. 반면 일순은 타자의 세계를 깨지 않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밥 먹이기에 성공한다.


정신 질환이 문제가 될 때는 행동이 자신의 삶을 파괴하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심한 피해를 끼칠 때이다. 본인 스스로도 문제시하지 않고, 주위와도 조화를 이루며 산다면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행동이 문제가 될 때 사회에 통합되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결국 정신병은 병인이 아닌 증상의 문제이고, 증상이 문제가 되는 것도 마찰로 번지냐 아니냐의 사회적 환경과 관계가 있다. 푸코가 지적했듯, 광기를 증상과 의학적 분류를 통해 체계화하고 실체화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위험을 내포한다.


이성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타인에게 휘두른 수많은 폭력들. '표준화의 압력'은 모든 것을 분류하고 명명하고 경계를 세우려 한다.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는 어디이며, 그것을 결정하는 권리는 그 누구에게 있는걸까. 인간은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영군이 자신이 싸이보그임을 고백하자 어머니는 대답한다.


"괜찮아. 몸 이상한 데는 없고? 남들 모르게만 하면 돼."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느꼈다. 싸이보그면 뭐 어때, 굶지 않고 밥 잘 먹는게 중요하지. 일단 살고 보자. 박찬욱 감독은 '내 모든 영화는 구원에 대한 영화다'라 말한 적이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타인을 교정하는 대신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는 공감을 말하는 따뜻한 영화이다. 비정상의 틀 안에 있는 영군과 일순만이 정상적으로 사랑할 줄 알았다. 생명은 이론의 대상이 아니다. 대의적 차원의 문제도 아니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감수성이 돋보이는 영화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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