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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Oct 23. 2019

여행 <<<< 관성

객지에서 쓰는 일기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다. 기존과는 다른 곳으로 떠나, 멀리 떨어진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일상을 환기시켜 준다. 이렇듯 달라진 공간, 장소가 주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

그래선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든다.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 색다른 곳에 가면 신나고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옛날에 즐거웠던 여행지를 다시 한 번 가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구나 비슷비슷하게 느끼는 감정 같다. 실제로 자유 여행객 3명 중 1명은 같은 장소를 3번 이상 방문한 회전문 여행자라 한다. 좋았던 곳에 다시 가면 그때의 감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바램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떠났다! 지지난 주부터 제주도에서 보름을 보냈다. 객지에서 장기간 머무는 것은 처음이다. 지금은 통영에 왔고, 앞으로 몇 주는 더 여기 있을 것 같다. 계속해서 느낀 것은, 어딜 가도 자신을 향한 관성을 떨치긴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장소는 그리 중요치 않다. 떠나기 전 꿈꾼 상상과 같이 객지라 해서 갑자기 사람이 버라이어티하게 바뀌는 건 아닌 것 같다. 옛날만큼 의욕과 의지도 덜하기도 하고, 안 그래도 허접했던 체력이 갈수록 더 약해지는 것도 한몫 한다. 그래서 숙소 앞 바닷가 산책하다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동네 가게나 미술관 어기적 구경 가거나, 밥 먹고 핸드폰 하고.. 그러다가 잠들었다. 빨래 더미가 쌓여서 셀프빨래방에 처음 가봤다. 섬유유연제도 팍팍 두개나 넣었다. 지금까지도 옷에 은은한 좋은 향기 난다. 건조까지 뽀송뽀송 다 해결되던데 세상 참 편리하다.


친구 온 날은 밤새 술을 퍼마셨다. 원래 다음날 우도를 갈 계획이었다. 근데 숙취 땜에 열두 시 넘어 일어났다. 그냥 다 귀찮고 힘들었다. 폭신폭신 부들부들한 침구에서 나갈 엄두가 안 났다. 마침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숙소에만 누워 tv 보며 낄낄댔다. 즐거웠다. 너무 웃겨서 눈물이 다 났다. 왠지 우도를 갔었어도 이것보다 더 즐거울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하는 짓이 그냥 서울에 있을 때나 다를 바 없었다.



한때는 여행 때마다 매번 익스트림 액티비티를 찾아다녔다. 시작하기 전의 떨림이나, 그 순간만큼은 온 세포가 생생히 느껴지고 살아있는 느낌이 좋았다. 머릿속의 모든 잡생각은 사라지고,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만 들렸다. 새삼스럽게 정말 살아있구나 인식하는 순간들. 그저 현재에만 있는 그 때에 집착했다. 특히 번지점프 뛰러 갔을 때의 번지대 앞 기분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50m 발 밑엔 잔잔한 강이 있었고, 눈 앞엔 해 지는 일몰의 산이 보였다. 영원히 못 잊을 거다. 안 잊을 것이다. 그런 두려움과 설렘이 좋아서 액티비티를 찾아 댕기곤 했었다. 갈수록 자극적이고 무섭고 재밌는 것으로. 근데 요새는 다 귀찮고 무기력해졌다. 여행지에서도 하루에 하나의 일정이 딱 적당한 것 같다. 숙소에 누워있는 게 제일로 편하다. 이럴 때야말로 무기력을 환기시킬 새로운 액티비티를 할 때가 왔나보다.


제주 바이바이
무지개

그저께 통영에 왔다. 2년 하고 한 달 되기 전에 다시 재방문. 역시 제주보단 통영이 좋다. 제주는 정말 관광지 분위기라면, 통영은 보다 조용하고 휴식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느낌이라 더욱 마음이 편하다. 누군가 말하길 통영은 호불호 갈리는 여행지라 했는데, 나는 저엉말 극호이다. 맞는 수맥이라도 흐르는 걸까


미세먼지도 비껴간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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