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로부터 의미 있는 선물을 받았다.
<5년 후 나에게 q&a a day>라는 이름의 조금 특이한 다이어리다.
하루에 하나씩 1년 동안 답을 기록할 수 있는 365개의 질문들을 5년간 기록한다. '머리를 감지 않고 며칠까지 버틸 수 있는가?'같은 소소한 질문부터 '오늘의 나를 예술 사조로 표현한다면?' 같은 철학적 질문까지 광범위한 것들을 묻는다. 질문에 할 말 없으면 패스해도 된다. (같은 질문에 다음 년엔 대답할까?도 깨알재미) 5년간의 기록을 통해 매년의 대답을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다이어리다. 스스로의 변화와 성장을 담은 연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5년간 책장을 점유할 다이어리의 첫날. 오늘 날짜를 펼쳤다. 첫 질문부터 심상치 않았다... 갑자기 원수요? 난생 처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됐다.
나는 매번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또 그러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상대를 받아들일 만큼 선하거나 바다 같은 너그러움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감정들에 굳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움과 증오는 사랑만큼이나 그 대상에 얽혀 있는 강한 감정이다. 그렇지만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상처는 불가피하다. 이를 일일이 따질 수도 없거니와 하나하나 책임을 추궁하려 들다가는 자기연민만 키우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냥 상대에 대한 관심을 끄거나 적당한 거리를 두는 행동을 취하곤 했다.
의욕 가득한 첫날 첫 질문이라 투머치라이터가 되었다. 이래놓고 내년엔 누구 적으면 반전.. 그래도 자신을 드러내게 하는 질문에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이 다이어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며칠 전 방 정리를 하다가 옛날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재작년~작년의 생각들과 당시 인상 깊게 봤던 영화나 책 구절을 적어놓은 기록이었다. 불과 1년 전의 난데도 미묘하게 거리감이 느껴졌다. 변화를 체감하긴 했는데 그게 성장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시간이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그래도 과거에 소망했던 것을 현재 이룬 것도 보였고 소소하게나마 기분이 좋아졌다. 말 그대로 나는 나니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어느 수준에서 한계가 있다. 이때 기록은 자각하지 못했던 인식에 큰 도움을 준다. 그게 참 신기하고 흥미롭다. 지금도 썩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지만 조금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