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기세척기는 '이모님 3 총사'에 껴줄 수 있는가
많은 주부들의 살림에 도움을 주고 있는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그리고 빨래건조기.
일명 '이모님 3 총사'라고 불리는 가전이다. 신혼 필수가전이 된 지 오래인 듯한데 이 중 내가 보유하고 있는 것은 식기세척기뿐이다. 로봇청소기는 사연이 있어서 (이 브런치북의 6화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소유를 포기했고, 빨래건조기는 옷이 줄어드는 게 싫어서 구매하지 않고 있다. 식기세척기는 4년 전에 구매해서 잘... 쓰고 있긴 한데 과연 이 친구가 나의 집안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는지는 판단이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 1년 만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외동딸이라 형제자매가 없고 아버지도 안 계신 상황이라 나는 혼자 남겨졌고, 갈 데가 없었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 (현 남편)와 얼렁뚱땅 시작하게 된 동거. 이런 식으로 시작한 살림에 알콩달콩한 관심이 붙을 리 없었다. 세 들어 사는 반지하방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플라스틱 식기건조대를 그냥 썼다.
1년 뒤, 혼인신고를 하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부터 식기건조대에 관심이 생겼는데,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직접 구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전에 쓰던 플라스틱 식기건조대는 걸핏하면 물때가 끼고 조금만 소홀히 하면 물받침에 물이 고여 냄새가 났던 게 생각이 나 스텐으로 된 식기건조대를 구매했다. 그러나 맞벌이 사회초년생 부부가 살림을 야무지게 해내기는 어려웠고, 밀린 설거지를 주말에 몰아서 하다 보니 식기건조대가 점점 비좁게 느껴졌다.
설거지를 자주 하는 대신 그릇을 더 많이 엎어놓을 수 있는 건조대를 들이기로 했다. 큰맘 먹고 당시 7만 원이 넘는 2단으로 된 으리으리한 올스텐 식기건조대를 설치했다. 따로 조명까지 사서 달고 뿌듯해했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니 그마저도 불편했다. 어린 아들은 몇십 분을 서서 설거지하는 엄마를 기다려주기 힘들어했고, 나는 이 그릇들을 다 어디다가 집어넣어 버리고 싶었다. 남편을 졸라 결국 식기세척기를 구매하게 되었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식기건조대는 떼어서 버려버렸다. 여기까지가 나의 '설거지한 그릇 말리기' 역사.
그러나. 인생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식기세척기만 들이면 설거지거지지옥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프라이팬, 어린이용 멜라민 식판, 나무주걱 등 식기세척기에 들어갈 수 없는 재질들이 꽤 많았다. 더 큰 문제는 그런 것들을 따로 설거지한 후 둘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놈의 미니멀라이프인지 뭐시긴지하는 패치가 잘못 적용되는 바람에 식기건조대는 버얼써 처분한 뒤였다. 아뿔싸.
게다가 얼마간 사용해 보니 음식물이 묻어있는 그릇들을 애벌설거지 해서 넣어야 하기 때문에 설거지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절약할 수 있는 시간은 평소 설거지 시간의 1/3 정도. 거기에 더해 가끔 식기세척기 내부도 세척을 해주어야 한다. 이쯤 되면 식기세척기에게 과연 '이모님'자리를 주는 게 맞는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결국 그래서 현재 우리 집 식기세척기는 일주일에 한두 번, 설거지거리로 나온 그릇의 비율 중 사기나 유리가 많은 날에만 작동시키고 있다.
정말로 나를 도와주는 가전은 따로 있다. 우리 집 선정 이모님 3 총사는 바로 제습기 1과 2, 그리고 음식물처리기다. 제주도의 여름은 실내습도가 93%까지 올라가는 날도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물속인가 싶다) 제습기 하나 가지고는 부족하다. 습도가 그 정도인데 제습기가 없다면 빨래는 영원히 마르지 않고 방바닥은 수영장마냥 미끌린다. 제주도민에게 제습기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가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음식물처리기에 대해서는 긴 말 않겠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세계다.
그 어떤 상태의 그릇도 다 받아줄 수 있게끔 발전할 때까지 식기세척기의 포지션은 공식적으로 '유보'이다.
* 글쓰기 초보입니다. 라이킷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 다른 회차도 둘러봐주세요~ 재밋서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