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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름 Jul 02. 2024

미원. 그 건널 수 없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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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생일을 앞두고 아들이 생일선물로 건담프라모델을 사달라고 해서 같이 마트에 갔다. 레고와 마찬가지로 건프라 역시 다양한 난이도와 가격대가 있다. 아들은 그동안 몇 번 8세용 건프라를 도전했는데, 이젠 곧잘 혼자서도 맞추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그다음 단계를 찾고 있었는데 오늘 아들 눈에 들어온 건 15세 이상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분명 혼자 못할 것 같았다. 이젠 앉아서 뭘 오래 들여다보면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기 때문에 나는 아들을 도와주고픈 생각이 없었다.

이거 너무 어려울 것 같은데 하며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이미 꽂힌 건 어쩔 수 없었다. '생일선물'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이대니 지갑은 성문을 스르르 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아들은 프라모델을 맞추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히잉 하며 우는 소리가 되었다. 역시. 어려워서 잘 못 하겠는 모양이다. 처음엔 낑낑대던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대성통곡으로 바뀌었다.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멋들어지게 만들어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으니 서럽고 답답해진 것이다. 실력이 안목을 따라가지 못하니 스스로게 실망할 밖에.


나의 요리가 바로 이렇다. 줄은 몰라도 맛 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요리는 하얀 콩나물무침이다. 양념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는 오히려 쉽다. 하양노랑을 유지하면서 콩나물 본연의 맛과 향을 살려내는 일이야말로 레시피가 아닌 '손맛'이 필요한 요리라고 생각된다. 콩... 나물 무침을 요리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여튼 그렇다.


김밥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다. 콩나물 데칠 때 가장 큰 화두인 뚜껑 문제는 이미 터득했고, 무수분도 도전해봤다. 다진 마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다져져 있는 기성품 말고 깐 마늘을 즉석에서 다져서 사용하기도 하고, 액젓이나 국간장을 다른 브랜드의 것을 사보기도 하며 연구를 거듭했다. 그래도 역시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는 하얀 콩나물무침은 할 때마다 이번에는 잘 되려나 두근두근하게 되는 요리이다.


무슨 요리든 잘 해내는 엄마에게 엄마는 왜 이렇게 요리를 잘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말했다.

- 그럴 때 다시다를 살짝만 넣어. 아주 조금만.

- 에에? 비결이 다시다였어?

- 쪼끔은 넣어야 돼. 안 그럼 맛이 안 나.

- 아 뭐야 실망이야. 엄마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는 줄 알았는데.

- 다시다는 괜찮아. 나는 그래도 미원은 안 쓰잖아.

-???????? (무슨 차이가 있지?) 


그 때 엄마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하얀 콩나물무침을 완성코자, 차마 미원은 사지 못하고 그 옆에 있는 '연두'를 샀다. 사기 전에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제품뒷면의 성분표를 하나하나 읽어보며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하며 갸웃거렸다. MSG가 공식적으로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왠지 최후의 최후로 미루고 싶은 게 주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오게 된 연두는 처음엔 데면데면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거의 액젓처럼 감칠맛을 내는 용도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국 끓일 때도 조금 넣고 각종 무침요리에도 조금 넣고. 특히 계란과 잘 어울려서 계란요리에는 꼭 한두 방울을 첨가하게 되었다. 감칠맛이 살아나면서 예전보다 전체적으로 음식 맛이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다. 하나둘 이렇게 조미료에 손을 대다 보면 점점 더 자극적인 걸 찾게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연두는 괜찮아. 나는 그래도 MSG는 안 쓰잖아.





* 글쓰기 초보입니다. 라이킷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 다른 회차도 둘러봐주세요~ 재밋서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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