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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le Rain Nov 09. 2024

김장

그리움과 부담 사이

어제는 김장을 하러 시댁 부모님 댁에 다녀왔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올해도 김장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늘 하던 대로 김치를 사 먹는 게 나을 수 있겠다 싶기도 했고, 번거롭기도 하고, 예전만큼 김치를 많이 먹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김장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일 김장할 건데 올 수 있니?'라고 하시니 부담감과 당황스러움을 안고 마지못해 간 것이었습니다.


몇 해 동안 김치를 사 먹었었고, 시어른들께서는 평소 같았으면 두 분이서 김장을 하고 김치를 가져가라고 하셨을 텐데, 올해는 김장을 하려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시다 보니 엄두가 나지 않으셨나 봅니다.


부모님 댁에 도착하니, 이미 준비된 재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절임배추와 고춧가루, 마늘, 쪽파, 새우젓, 무생채, 기타 등등.. 그 모든 것들을 미리 준비하시느라 애쓰신 두 분을 생각하니 그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번거로움은 줄지 않고, 김치 조금 가져오면서 용돈은 많이 드려야 했고,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고 이래서 김장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김장을 하면서 부모님과 나눈 대화는 반복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연세가 드실수록 새로운 이야기보다, 옛날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시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놀라운 것은 어쩜 그렇게 매번 처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건지... 그런 이야기를 진짜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번도 넘게 듣는 일도 너무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고 딱 자를 수도 없어서,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듣고 있다 옵니다.  그분들을 존중하고 그분들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참고 들어야 했습니다.


김장을 하면서 느낀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힘든 하루였고, 육체적 피로와는 다른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이 좋아하시는 걸 보니 그래도 나쁘지 않았단 생각도 듭니다. 이런 순간들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추억으로 남아있겠지요.


결국, 김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 한편에 그리움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부모님과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과정이 힘들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 힘들더라도, 피하지 말고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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