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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에서 머무는 시간

by simple Rain

시부모님을 모시고 서울의 병원을 오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어르신들께서는 동네 병원은 혼자서도 잘 다니시지만, 큰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자식들이 동행해야 합니다. 주로 제가 담당이 될 때가 많은 편이지요.

시어머님은 눈(망막)이 안 좋으셔서, 시아버님은 심장이 안 좋으셔서 큰 병원으로 갑니다. 특히 아버님은 경도인지장애 판정까지 받으신 상태라 혼자 다니시도록 둘 수도 없습니다.


병원 대기실에서, 차 안에서, 혹은 문득 생각이 떠오르실 때마다 어르신들은 옛날이야기를 꺼내십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 어릴 적이었던 시절의 기억을 자주 말씀하십니다. 꼬꼬마였던 손주들이 뛰어놀던 모습, 서툰 말투로 재잘거리던 순간들,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걸었던 일들, 함께 여행하며 즐거웠던 추억들.. 이제는 다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는데도, 그분들에게 손주들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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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현실의 순간이 불안하고 힘드실수록, 시부모님께서는 더욱 과거를 떠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몸은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려는 걸까요. 어쩌면 그 시절이 그분들에게는 여전히 선명한 '현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이, 또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이 때때로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해도 됩니다. 큰 수술을 앞둔, 몸이 예전 같지 않은 상태에서,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결국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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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이야기 벌써 몇 번째예요"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그분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 날이 오면, 저도 지금의 기억을 꺼내 곱씹고 있을 테니까요.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답답하고, 또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도 하면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습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을 때가 가장 소중한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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