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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

어머니와의 데이트

by simple Rain


모처럼 쉬는 오늘은 어머니와 데이트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어머니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라 그런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어디 근교라도 훌쩍 다녀왔을 텐데,

요즘은 어머님께서 긴 시간 차를 타는 일은 부담스러워하시기에

집 근처, 차로 금방 갈 수 있는 가까운 음식점을 향했습니다.


젊고 건강하셨을 때는 정말 자주 다녔습니다.

여행도 함께하고, 새로운 맛집도 찾아다니며

마치 친구처럼 웃고 떠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육아에 지친 저를 데리고 이곳저곳 다니시며 남편보다 더 챙겨주셨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는 늘 활기차고 당당하셨고,

저에게는 든든한 바람막이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연세가 드셔서인지

멀리 가는 것, 복잡한 곳에 가는 것에는 주저함이 많아지셨습니다.

“그냥 가까운 데서 먹자.”

“멀리는 좀 피곤해서 못 가겠다.”

이제 어머니의 일상은 조금 더 조심스럽고, 단순하고, 소박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데이트는 따뜻했습니다.

늘 아버님과 함께 계시던 어머니에게

이 짧은 시간이야말로 오롯이 본인만의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님이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면서도, 우여곡절 힘들어하셨는데

시간이 지나 이제 잘 적응을 하셔서

어머니에게도 숨 쉴 틈이 생겼습니다.

비로소 자기 이름을 되찾은 시간, 누군가를 보살피느라 힘들었던 시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겁니다.


아버님은 여전히 어머니를 힘들게 하십니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늘 어머니의 에너지를 다 끌어 쓰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버님을 완전히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힘들다 하시면서도, 안쓰럽다며 걱정하시기도 합니다.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오가는 어머니를 보며,

저는 때때로 생각하게 됩니다.


두 분이 함께 걸어가는 이 노후의 시간이

진정 행복한 걸까,

한 사람이 이렇게 희생하고 지쳐가며 이루어지는 동행이

과연 따뜻한 이름일 수 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두 분 사이에는 제가 모르는 두 분 만의 지난한 시간이

존재할 테지요

저는 오늘의 어머니를 보며

조금은 안도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웃으시는 얼굴,

음식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맛있다” 하시는 모습이

마치 예전의 활기찬 어머니를 뵙는듯한

느낌을 갖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누군가를 보살펴야 할 간병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저의 어머니로서 존재하는 시간을 함께한 소중한 하루였습니다.


이런 날을 자주 만들어야겠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조금은 가볍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날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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