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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위의 창작

부제 : 익숙한 문장과 낯선 책임

by simple Rain

나는 가끔, 내가 쓴 글이 정말 '내 것' 인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 아무런 참고 없이 쓴 글인데, 어쩐지 익숙한 표현,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문장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쩌면 언젠가 감명 깊게 읽었던 문장들이 마음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내 글 속으로 '툭'하고 들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 땐 멈칫하게 된다. 이건 나의 창작일까? 무의식의 표절일까?

이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모호하고, 나는 그 흐릿한 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어릴 적 나는 책을 좋아했고, 책을 보다가 느낌이 좋은 문장은 따로 노트에 필사해 두었다. 명문장을 노트에 옮기고, 되뇌다 보니 그 말들이 내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습득된 타인의 언어가 어느 순간 나의 문장이 되어버리는 경험. 그것은 분명 '배움'이자 '영감'이었지만 '위험' 이기도 했다.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처음 진지하게 마주한건, 내 SNS에 올린 글을 누군가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네요"라고 댓글을 남겼을 때였다. 처음엔 '아닌데 내 생각을 쓴 글인데'하며 억울했다. 하지만 그 지적은 내가 '어디까지가 내 생각이고 내 것인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 주었다.


창작은 결국, 타인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쓰는 모든 단어는 누군가 먼저 사용한 것들이고, 우리가 읽은 모든 글들은 우리 안에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 위에 쓰인 글을 우리는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창작이란, 완전히 새로운 말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나만의 시선과 감정, 그리고 삶을 담아 '다르게 말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문제는 그 '고유함'을 의식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익숙한 문장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감동받은 표현을 무심코 가져오고, 때로는 그것이 창작의 일부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거기엔 악의가 없을 수 있지만, 그 자체로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창작이란 단어를 조심스럽게 쓰게 되었다. 창작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기보다는, 수많은 영향 속에서 자기만의 시선과 언어를 되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 시선이 때로는 서툴고, 그 언어가 어눌하더라도, 정직하게 스스로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에게는 그만의 저작권이 생긴다.


그렇다고 두려움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요즘 저작권이 '금지'나 '검열'의 도구가 아니라, 창작자와 이용자 모두가 더 자유롭고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라고 느낀다. 출처를 밝히는 일, 허락을 구하는 일, 인용의 경계를 지키는 일. 이 모든 것은 부담이 아니라 예의다.


그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창작의 문화는 더 건강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글을 쓴다. 어떤 날은 무의식 중에 떠오른 말들이 익숙해 보여 다시 고쳐 쓰고, 어떤 날은 한 문장이라도 더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려 애써본다. 익숙한 문장을 경계하며, 나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 그 여정 속에서 나는 '창작자'가 되고, 그에 따르는 낯선 책임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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