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이 초라함이 되지 않으려면

품위는 지키고, 기품은 남는다.

by simple Rain

나이가 들수록 자주 떠올리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품위'이고 또 하나는 '기품입니다.

젊을 때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말들인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바라볼 때,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이 단어들이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1. 품위,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되는 것

품위(品位)라는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물건 품'자를 이룹니다. 내가 뱉는 말들이 쌓여 나의 등급과 위치를 만든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품위는 드러내려 애쓰지 않아도 순간의 선택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한 번 더 숨을 고르는 태도,

유리한 자리에서도 상대를 깎아내리지 않는 말투,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삼키는 판단 같은 것들입니다.


젊은 시절엔 솔직함이 용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렸고, 참는다는 건 지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게 됩니다.

모든 감정이 즉시 표현될 필요는 없고, 모든 진실이 다 말해질 필요도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품위는 자기감정을 다루는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느껴집니다.

상대를 이기지 않아도 되는 마음,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유,

그리고 나 자신을 함부로 쓰지 않는 태도에서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2. 기품, 시간이 빚어낸 은은한 빛

품위가 어느 정도 의도적인 노력으로 가꿀 수 있는 외적인 질서라면, 기품(氣品)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배어 나오는 기운입니다.

기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수많은 풍파를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았던 단단한 자존감, 남을 탓하기보다 나를 돌아보았던 성찰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기품 있는 사람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가 머문 자리에는 은은한 잔향이 남습니다. 그것은 삶의 통찰을 통해 얻은 '너그러움'과 삶의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여유'에서 오는 빛깔일 것입니다.

그래서 품위는 지킬 수 있지만,

기품은 흉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품위는 오늘의 선택으로 만들어지고, 기품은 살아온 시간의 결과처럼 남습니다.


3. '나이 듦'이라는 근사한 옷

우리는 모두 늙어갑니다.

하지만 모두가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기품은 상실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이 떠나간 자리를 아쉬움이나 원망으로 채우는 대신, 그 빈자리를 깊은 지혜와 다정한 시선으로 채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의 모습 아닐까요?

"나이가 들어서 멋진 게 아니라, 멋지게 나이가 들어가는 것"

이제는 반짝이는 유행보다는 변하지 않는 고전의 가치를 닮고 싶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온기가 있고, 내 걸음걸이에 평온함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품위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기품 있는 삶. 그런 삶을 향해 오늘도 천천히 걸음을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