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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8. 2022

잘 지내시나요, 당신 그리고 나에게

[명작 다시 보기] 영화 '러브레터'가 건네는 인사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작 다시 보기]에서는 이전에 본 비교적 옛날 영화를 다시 본다라는 의미(再)와 '어, 너 다시 봤다?'라는 '다르게 보인다, 다르게 보다'의 의미(異)로 글을 남기려 합니다.




 겨울이 되면, 로맨스 영화가 부상한다. 이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신체적 추위를 느낀 사람은 심리적 따뜻함을 찾기 때문에 로맨스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한다고 한다. 얼마 전 (2021.12) 왓챠에서 '러브레터'가 1위로 랭킹에 오른 적이 있었다. 영화 '러브레터'는 덧붙일 말 없이 한국에서도 정말 유명한 영화이다. 더군다나 겨울 로맨스 영화 추천에 빠지지 않는 영화이다. 1990년 후반에 개봉한 영화가,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작은 역시 궁금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러브레터'를 처음 보게 되었다.


영화의 첫 시작, '와타나베 히로코'. 그녀는 눈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영화의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 그녀는 새하얀 눈밭에 누워 눈을 감았다 떴다, 숨을 끝까지 참았다가 덜컥, 숨을 내뱉는다. 그녀는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그리고 가지런히 누워있다. 깨끗하지만 공허한 색채인 하얀색은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는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 그녀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마치 그 사람처럼 가지런히 눈밭에 누워본다. 공허한 눈빛과 쓸쓸한 작디작은 뒷모습은 마치 이 세상을 떠나는 듯 먼 길을 떠나는 자의 모습 같다. 그녀가 절실히 그리워하는 '그'는 바로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 '후지이 이츠키'이다.



 스토리의 진행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편지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편지는 '와타나베 히로코'가 죽은 애인인 '후지이 이츠키'의 졸업 앨범에 적힌 주소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답장이 오지 않을 것 같았던 편지에 그의 이름으로 답장이 온다. 하지만 답장을 보낸 '후지이 이츠키'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와 전혀 다른 인물, '(女) 후지이 이츠키'였다. 그녀는 '와타나베 히로코'와 매우 닮은 인물로, 영화에서는 1인 2역으로 동일한 배우가 다른 역할을 연기한다.


오타루에 살고 있는 후지이, 그녀는 영화 내내 '기침'을 한다


 현재 오타루에 살고 있는 '후지이 이츠키'는 죽은 '후지이 이츠키'와 중학시절 같은 반이었고,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계속 엮이며 반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었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학교 도서부를 맡게 된다. 죽은 '후지이 이츠키', 그는 도서관에서 아무도 빌리지 않았던 책을 빌려 '대출 카드'에 자신의 이름을 첫 번째로 남기는 것을 취미로 가진 특이한 사람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죽은 '후지이 이츠키'는 다시 재생된다.


 사람이라면 탄생과 함께 죽음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수많은 관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만남의 순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별은 당연하지만 늘 적응하기 어렵다. 어떤 마음이든, 그 감정은 흘려보내줘야 한다. 충분하지 못한 애도는 우울에 빠지기 쉽다. 우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충동적인 죽음과 가까워진다. 상실의 아픔은 충분한 애도로 채워져야 한다. 충분하지 못한 애도는 '후지이 이츠키'의 그치지 않는 감기와 같이, 작지만 신경 쓰이는 존재로 남는다.


 영화의 끝에서, 그녀의 감기는 어느새 멎는다. 상실에 대한 아픔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진정으로 그를 애도하며, 병실에서 읊조리듯 말한다.


잘 지내시나요, 전 잘 지내요.


                    '오겡끼데스까', '아타시와 겡끼 데스'


 영화의 유명한 명대사이다. 이 대사는 영화의 주인공인 '와타나베 히로코'가 설산에서 외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 병실에 누워있는 '후이지 이츠키'의 모습과 교차되면서 나타난다. 이 둘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떠나간 그에 대한 애도를, 그리고 그에게 듣고 싶은 말을 함께.


설산에서 힘차게 불러보는 '안부 묻기'는, 다시 메아리치며 돌아온다. 덮어놓은 상실에 대한 슬픔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흐릿해질지 모르지만, 여전히 '나'의 안에 존재한다. '시간이 다 해결해줄 거야'라는 말, 충분한 애도와 상실에 대한 슬픔을 흘려보내었다는 전제 하에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순간'을 살아간다. 방금 전의 미래는 곧바로 과거가 된다. 시간은 마냥 흘러만 간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 몸의 세포마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7년이라는 주기마다 모든 세포는 새롭게 교체된다. 영원하지 않기에 아름다운 인간. 이 인간에게 주어진 '상기의 힘'은 매우 강렬하다. 시간이 흐르면 인간에겐 '과거'가 되고, '기억'으로 남는다. 그 사람이 자주 만들어 주었던 음식, 그 사람이 자주 흥얼거렸던 음악, 그 사람의 향기. 현재의 '나'가 다시 과거를 발견하는 순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덧없이 아름다운 순간일 것이다.


 영화 '러브레터'는 기억에서, 충분한 애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충분한 애도가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를 그리고, 떠올리며, 그와 함께 했던 순간, 그리고 그의 과거를 되짚어보며 진정으로 추모하며 충분한 애도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와타나베 히로코'는 새로운 사람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후즈이 이츠키'에겐 충분한 애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르고 지나쳤던 상실에 대한 아픔을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는 늘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며 지낸다. '안녕하세요?'의 '안녕'은 安寧(편안할 안, 편안할 녕)으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하다, 걱정없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안녕하세요?'의 의미는 아무 탈이나 걱정 없이, 편안한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나에게도 안부 묻기를 해보자. 영화에서 그녀가 설산에서 외친 안부 묻기가 되돌아 온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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