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1부, 마음은 100부
결혼식을 앞둔 신혼부부들이 가장 설레며 준비하는 것 중에
하나는 결혼반지입니다. 요즘은 웨딩밴드라고도 하던데요.
끝나지 않는 원형의 반지를 나눠 끼며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결혼반지이지만, 어떤 종류에나 분류를 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는 결혼반지에도 등급을 세워놓았습니다.
제가 결혼했던 10년 전에도, 결혼반지를 검색하면
하얗게 빛나는 다이아가 가운데 빛을 내는 비싼 반지들이 많았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은 인터넷을 많이 검색하는데요.
'남편이 3부 다이아로 프러포즈를 했다.'
'시부모님이 5부 다이아를 사주셨다' 등 정말 글이 많았습니다.
다이아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남편의 능력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남자 쪽 부모님의 경제력을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세상 모든 신혼부부들은 당연히 다이아 반지정도는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결혼 = 결혼반지 = 다이아반지)
아내 몰래 알아본 다이아 반지 가격이 너무 비싸서 놀란 뒤로
반지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있던 어느 날입니다.
아내는 결혼반지는 "평평하고 낮은 걸로 했으면 좋겠어", "
반지 위로 뭐가 올라와 있으면 옷만 해지고 긁히잖아"라고 하며
다이아 반지는 사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제 아내가 스물다섯 살, 봄꽃 같던 나이였습니다.
저는 별 다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돈만 있었으면, '그래도 결혼반지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라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서 손에 끼워주었을 텐데..
아무것도 없던 스물일곱의 저는 "그래도 괜찮겠어?"정도의 말만
한 두 번 돼묻고는..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밖에 줄 수 없는 가난한 남편을 만나다 보니
고운 손에 다이아반지 대신 소소한 둥근 반지하나를 끼어주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을 하고 큰돈은 못 벌어도 가진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갔지만
늘 제 마음속에는 다이아 반지를 못해줬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2달 정도 지난 시점부터
'1주년 때는 아내에게 다이아 반지를 사줘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는데요.
월급이 워낙 적은 시점이고 서울살이로 빠뜻한 생활이기에
제 용돈을 모아서 반지를 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시에 한 달 용돈이 15만 원이었는데 회사에서 밥도 먹고 해야 하다 보니
많이 모이질 않았고습니다.. 어떤 달은 3만 원, 어떤 달은 7~8만 원을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꼬박 열 달을 모아서 70만 원 정도를 마련하였습니다.
모은 돈을 가지고 아내 몰래 동네 금은방 몇 군데를 가서 물어봤습니다.
사장님들은 이 정도 돈으로는 1부 다이아 정도밖에 안되는데
찾는 사람이 없어서 안 판다고.. 종로에 가서 찾아보고 하셨습니다.
아내에게는 야근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종로 3가 가게들을 열심히 발로 뛰었습니다.
사장님들은 1부 다이아는 너무 작아서.. 태가 안 난다고 하시며
3부는 돼야 한다고 하거나..
큰돈이 되지 않으니 관심 없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가게에서 1부 다이아 반지인데도
너무 예쁘게 만들어져 있는 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제를 하고 반지 호수를 조절한 뒤
집으로 몰래 가지고 왔습니다.
D-day에 맞춰서 결혼기념일 당일 평상시에 가보지 못했던
비싼 식당을 예약했습니다. 그날 맛있는 걸 먹고
반지를 '짠'하고 보여줄 생각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기다리며(전날 밤놀이동산 가는 학생의 설렘) 시간을 보내던 중,
결혼기념일 전날 집에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도시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뭘 만드는 거야?라고 묻자, "내일 우리 1주년인데 기념으로
오빠 회사분들이랑 나눠먹을 도시락 만들어~ 이러면 우리 남편 기 엄청 살겠지~"라고 하였습니다.
너무 고맙고, 또 마음이 찡해서 한참을 말을 못 했던 기억입니다.
결혼기념일 당일, 도시락을 직원들과 나눠먹고 퇴근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이후 아내를 만나 '근처 가까운 식당에서 가볍게 밥 먹고 들어가자'라고 하며(지금도 종종 하는 거짓말)
행선지도 모르는 아내를 데리고 엘본더테이블로(당시 인기를 달리던 최현석 세프의 식당) 향했습니다.
그날 저희 부부는 평생 처음 먹어보는 코스요리를 먹었습니다.
전화로 식당 예약을 하던 날, 결혼기념일 이벤트임을 전하고, 코스요리 끝에
'반지'도 함께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한 상태였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마지막에 예쁜 접시에 반지케이스 아내 앞으로 도착하였습니다.
깜짝 놀란 아내가 반지를 손에 끼고 화사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3부, 5부처럼 커다란 다이아도 아닌, 작은 1부 다이아 반지였지만
눈시울이 붉어지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용돈을 열심히 모아도 이 정도밖에 안되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더 좋은 것들로 가득해줘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처럼 저의 재테크, 돈에 관한 생각들은
제 아내에 대한 고마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저를 믿어주는 아내가 말했던 것처럼
지긋지긋한 가난의 고리와,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삶들이
끊어지고 이제는 미래를 꿈꾸며 살게 되었습니다.
결혼 8주년을 맞아 과거 속으로 다짐했던 목표로 이루어졌습니다.
'나중에는 더 좋고 예쁜 반지를 사줘야지'라고 말했던 제 다짐대로
더 예쁜 결혼반지를 아내 손에 끼워줄 수 있었습니다.
다이아 반지의 크기로 사랑을 말할 수 없지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고, 더 좋은 곳에 함께 가고 싶고
더 좋은 순간들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 시간 제 옆에서 믿고 기다려준 제 아내를 위해서도
저는 더 부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더 많이 벌고, 좋은 투자를 통해 자산을 키워나가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순간에도 예전처럼 속으로 참거나
머뭇거리지 않도록 지금의 순간을 소중히 하며 열심히 노력해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