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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번째 이사_행복주택에 당첨되다(송파구 대단지)

by 김토끼

안녕하세요. 김토끼입니다. 지난 10년간 5번의 이사를 하였고 조만간 6번째 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시리즈로 포스팅되고 있는 저의 이사 기록 세번째 챕터입니다.

제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다음 편을 기다려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던 초년생, 첫 서울살이의 기록들이라 크게 보여드릴 것은 없지만

소소하고 현실적인 제 경험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세번째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2 세번째 이사, 송파구 행복주택에 당첨되다.


서울 봉천동 언덕, 구축아파트에서 시작된 서울살이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도 맨주먹으로 서울에 올라와 머리 두고 누울 집한칸은(반전세였지만)

우리가 마련했다라는 뿌듯함으로 나름대로 좋은 추억들을 많았습니다.


서울에 적응하며 열심히 고군분투하던 2018년 중순 지점에 청년, 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이라는 제도가 있고, 서울 주요 지역에서 모집을 한다는 공고를 보게 됩니다.



초보 서울살러였지만 강남, 서초, 송파가 비싸고 살기 좋다는 것은 익히 들었던 상황인지라

관심을 가지게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송파구 행복주택은 39m2, 49m2, 59m2 타입이 있었습니다.

당첨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되어 이왕 신청할거 좀 크게 해보자 하며 49m2로 신청을 하였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넣었는데 온 우주가 도왔던 것일까요?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행복주택이 당첨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됩니다(저한테 아내=위인)


단군이래 최대단지라는 송파구 신축대단지 행복주택에 당첨이 된 것입니다!!

당시 1만 6,744명이 신청하여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보이던 상황이고

동일평수(49m2) 실거래가격이 11억 중반까지 나오던 시점입니다.


행복주택은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로 총 6년을(2년단위 계약) 살 수 있었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응모하였던 단지였습니다(일정소득을 넘지 않아야 하는 조건은 있었습니다)


계약을 앞둔 시점에 서류를 살펴보니 보증금 약 1억 7천만원이 필요하였습니다.

행복주택은 복지차원으로 제공되는 것이라 분명 저렴한 금액이었으나

당시 저희 부부의 전재산이 1억을 겨우 모은 상태였기에 7천만원 정도를 대출을 받게 됩니다

(인생 최대 수준에 빚에 몇일을 사시나무 떨듯 대출을 알아보고, 은행을 다니게 됩니다)


이리뛰고 저리 뛴 결과, 행복주택 계약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해당시점에 주위에 행복주택 당첨결과를 알리자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축하해 주셨습니다(살면서 좋은 분들을 참 많이도 만났습니다)


"신축아파트라 정말 좋을꺼야!", "송파구 내가 살아봤는데 참 좋은 곳이야" 등

정말 좋을 거라고 말씀해주셨지만 저희는 아직 현실감이 없었습니다.


신축아파트에 살아본 적도 없고, 송파구는 어릴때 롯데월드로 가본 경험 밖에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신축아파트 검수를 하는 날을 맞아 처음으로 행복주택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날 정말 신세계를 만나게 됩니다(몇번이나 턱이 빠졌는지..)


아파트와 이어져있는 지하주차장(외부주차 하다보면 눈오는 겨울 쉽지 않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집이라뇨..(수박 넌 죽었다)


모든 것이 새것으로 반짝이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저희집'으로 처음 들어가보게 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정말 운동장만한 기분이었습니다(광활하다!)

아내는 "오빠 내가 몇 걸음 걷는지 봐봐"하면서 현관부터 거실 끝까지 한참을 걸어 왔습니다

(집의 크기는 49m2이지만 마음은 4,900m2)


하자보수 검사이후 입주청소로 지정된 날 저희 부부는 다시 행복주택을 찾게 됩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신축아파트의 경우 건축과정에서 먼지 및 공업가루 등이

전체적으로 집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신축입주 청소는 전문가에게 보통 의뢰합니다.


지식도 없고 돈도 없던(계약금 넣고 현금 0원) 저희는 젊음과 패기로 하루 종일 청소를 하였습니다.

그 와중에 배고파서 밥도 시켜먹었습니다(아시죠? 이런날은 짜장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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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흘러 남의 집 같고 생경하기만 했던 장소들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변하였습니다.

image.png?type=w773 정말 행복을 주었던 '우리집 거실'


따로 인테리어는 하지 않았고 기존에 쓰던 가구들을 그대로 썼습니다.하지만 집이 바뀌니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무엇보다도, 거실크기가 참 달랐는데 이사오기 전 집에서는(봉천동 언덕) 쇼파와 TV거리가 거의 붙어 있어 힘들었는데(TV를 보다보면 눈이 아팠다) 이곳은 잘하면 돋보기라도 껴야될 판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집은 49m2입니다. 마음은 뇌를 지배합니다)


분위기만 바뀐 것은 아닙니다. 삶의 사소한 일상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걷기, 달리기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내 덕분에(저는 누워서 tv보는걸 제일 좋아합니다)

양주 신혼집에서는 자주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봉천동으로 이사온 뒤에는 이런 산책이 다소 어려웠는데 집을 나서도

위, 아래 언덕길과 구불구불 좁은 빌라단지 밖에 없어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온 행복주택은 산책천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안에 2km의 산책 공간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체감이 아니라 실제입니다. 아파트 단지 중앙 산책로 1바퀴 = 2키로미터)


아내는 밤 마다 달리기 시작합니다(밤 10시고 11시고 상관없이 걷고 뜁니다)

사실 이건 매우 특별한 포인트인데 늦은 심야시간에 여성분들이 조깅을 해도

전혀 위험하지 않을만큼 안전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덩달아 저도 꽤 운동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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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마을 갔았던 송파구 행복주택

아파트 내부 환경만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부환경은 더욱 좋았는데

집에서 15분정도 걸으면 석촌호수가 나왔습니다(석촌호수 벚꽃아시지요?)

사람들로 가득 붐비는 그 곳을 아침일찍 일어나 조깅으로, 자전거 산책으로 늘상 가곤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벚꽃길을 수 없이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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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산책이 석촌호수였던 시절


입주 첫해, 어린시절 제 꿈이었던 롯데월드 연간 회원권을(1년간 무제한) 아내가 선물로 사줬습니다.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서 걸어서 롯데월드에 도착한뒤, 츄러스 하나 먹고

놀이기구 1~2개 타고 집에와서 아점을 먹곤했습니다(놀이기구 러버에게 최고의 순간들)


회상하는 김에 조금더 생각해보면, 자전거를 타고 20분정도 달리면 한강공원이 있었습니다.

거의 태릉인으로 빙의한 아내는 주말에는 한강라이딩을, 평일에는 아파트 산책, 석촌호수 산책을 하였습니다.(운동 포비아인 저도 덩달아 아기스포츠단 수준으로는 도달합니다)


집에서 김치볶음밥으로 도시락을 해서 한강에가서 노을을 보면서 먹곤했습니다.

image.png?type=w773 주말마다했던 한강공원 라이딩


지금 이렇게 적다보니 정말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마음껏 행복하였습니다.

행복주택이라는 이름처럼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6년동안 입주기간이 연장할 수 있다 보니, 여기서 평생 살 수 있을것 같은 마음으로 2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긴장감 없이 살다보니 행복주택 2년 계약갱신을 앞두고 재신청을 해야하는 시기를 놓쳤기 때문입니다(이럴수가)

이것을 저희 부부는 아리에티 사건이라고 명명합니다.

(마루 밑 아리에티라는 만화에서 갑자기 집에서 쫒겨나게되는 상황이 나옵니다)


Sh주택공사로 부터 신청 기간이 지나도 재신청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추후에 들었지만

마음을 졸이던 시간을 기점으로 저희가 처한 현실을 자각하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6년의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구나. 언젠가 나가야하는 집이었구나.."

"살기 아무리 좋은 곳이어도 행복주택이 아닌 우리 돈으로는 못사는 곳이구나.."


행복주택에 사는 동안 안주하고 만족하며 살았던 2년동안 경제적 긴장감은 거의 사라졌고

(월 21만원 납입으로 6년을 살수 있었기에..)

오히려 양주나 봉천동에 살때보다 돈을 더 모으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행복주택은 분명 행복을 주는 곳이었지만, 그 행복에 취해 살다보니

절약하고 발전해야한다는 생각없이 그냥 재미있게만 살았던것 같습니다.


행복주택에서 살던동안 자본시장은 급격하게 바뀌어 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공부하며 준비하였던 사람들은 좋은 기회를 잡고 성장하던 중이었으나 저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당시 얼마나 인식이 없었냐면, 초등학교때부터 같이 자란 20년지기 친구가 결혼하며

집을 산다고 하였을때 인터넷이나 책 몇줄 본 것으로 아는척을 하며 "집 값이 떨어질건데 왜 사냐"

,"주식이나 부동산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고 모두 투기야"라고 힐난했습니다.

(지금 그 친구는 마포구 자가아파트에 거주중입니다..^^)


지식의 부족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돈을 모아야하는 개념 자체가 없고 가난한 삶에 지배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기초생활 수급자였던 저는 부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다보니 여우의 신포도처럼 "나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아",

"행복하게 살면되는거야. 돈은 가난하지 않을정도면 되는거야"라고 현실과 타협하고 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 결혼이후 5년동안 큰 사치를 부리지 않고 노력하며 살아왔으나

제 삶은 가난의 경계에서 맴돌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이 쌓이면 결국, 나를 믿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내가

저로 인해 가난한 삶을 살 것 같다는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끼게됩니다.


이후 제 경제 관념이 180도 바뀌게 됩니다.

어차피 집은 비싸서 못살테니 할 수있는 수준에서 적당하게 저축하고

얼마를 받을지도 모르는 국민연금에 막연히 기대며

나중에 어떻게든 살겠지라고 생각하던 모습에서


부자가 되자. 아내를 호강시켜주자.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만들자라는 목표아래

부동산투자, 주식투자를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꿈을 정하고 나니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를 위한 꿈도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꿈을 정할때

이루고자하는 마음이 더욱 강해짐을 느낍니다.


그러한 목표에 입각하여

저희 부부의 네번째 이사는 그전처럼 전세나, 반전세가 아닌

매매로 집을 사고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네번째 이사 글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정말 긴 글이었는데 끝가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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