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워킹맘이 오늘의 좌절에게

살다 보면 능숙한 날 온다.

by 풍또집

3년.

무려 3년 만에 시작한 출근길이다.



'아기 사진관'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도대체 내가 사진이라는 걸 잘 찍고 있는 건지도 확신이 없지만


어딘가에 속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딱 하나의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머리로 채 떠올려 내기도 전에 몸에 먼저 와닿더라.



카메라를 들기 전에는 자잘한 소품들을 만들고, 제작한 것을 구도에 맞게 배치해야 했으며

촬영이 후에는 나온 사진의 색감을 보정하고 사무적인 일을 처리한다.

센스 있는 고객 상대야 말할 것도 없다.



나와 같은 날 입사한 작가님은 손이 야무지고 미적인 것을 보는 눈이 섬세한 사람.

그에 비하면 나는 덩치 크고 둔한 곰 한 마리 같았다.

'우당탕' 소리가 나는 걸로 내가 일하는 곳을 알 수 있다는 우스개 소리도 오갔다.



내가 손이 느리고 미숙한 걸 알고 있기에

나는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한다.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느림보는

남들보다 일찍 출발해서라도

열심히 발걸음을 따라갔다.



나란히 걸은 것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너무 멀어지지 않게만 종종걸음을 하며 뒤따랐을지 모른다.



그 거리가 티가 나버렸을까.

어쩌다 한 번 오시는 회사의 대표이사님은 나를 나무라지도 칭찬하지도 않고

그저 옆자리의 동료에게만 시선을 두며 몇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스튜디오에 작가는 나를 포함하여 두 명뿐이다.)



내 눈에도 센스 좋은 직원이니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킨 대표이사님 눈에는 더욱 띄었으리라.



이사님의 돌린 등을 보며

맥이 탁. 풀려버렸다.



숨 가쁘게 따라가던 뱁새 다리가

결국은 황새 따라가기를 멈추고 숨을 몰아 쉬었다.



나는 몇 년의 시간 동안 그저 집에 머무르며

집안일을 하고 아기를 키웠다.

내가 온종일 한 일은 그것뿐이다.



그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었나 보다.

나는 영 손이 굳었다는 게 느껴졌다.



스멀스멀.

그 어떤 검고 축축한 것이 나를 장악해 간다.



대표이사님은 면접 당시

아이 엄마를 채용한다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백 프로 이해한다.

내가 엄마이기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그 이후 아무도 애 둘 아줌마에 대한 불편함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페널티를 부여해왔나 보다.


'이미 부족한 사람이니 뭐든 더 잘 해내리.'라는 생각이 언제부턴가 떠나지 않았다.



근데 그게 생각만큼 잘 안 됐다.

유감스럽게도 그랬다.



고개를 박고 엎드린 순간

갑자기 옛날의 어떤 날이 떠올랐다.



요즘 사람들 치고는 빨리 엄마가 됐던 나는

첫째 아이를 낳고서

내 매일이,

내 하루가,

세상 뒤편의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있는 기분이었다.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출근을 하는데 나 혼자 집이었다.

일 욕심이 많았던 나는 출근하는 남편을 보며 매번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선 그런 생각이 들더라.

'십여 년을 한 일에 몰두하면 장인이라 칭해주는데, 나는 육아의 장인이 되어가는 중이 아닌가.'



그 생각을 해냈던 순간을 떠올리고 나니

우중충하던 기분도 생각도 말끔해졌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

반질한 알밤 같은 아이들 얼굴을 뒤로하고 출근하여

하루의 일을 얼레벌레 처리하고

집으로 달려가 아이들을 픽업하여

집을 치우고 정리하는 동시에

애 둘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도 숨 가쁘게 잠이 드는 하루.



그날들을 살아내는 나는 지금 미숙하다.

미숙의 증거는 이렇다.



아이가 입원이라도 하면 간병은 어쩌지

내가 찍은 사진이 매장에 폐가 되고 있진 않은가

혹여 나를 뽑은 순간을 후회하고 계신 건 아닐까

다 어두운 저녁에 집에 오는 아이들이 너무 불행한 건 아닐까

하는 등의 쓸모없는 걱정, 근심들.



능력적으로 능숙하지 못할뿐더러

마음도 따라 그러하다.



아니, 어쩌면 마음이 익지 못해 능력이 굳었을지 모르겠다.



.

.

.



새로운 일은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이 드는 존재.


그 떨림을 마주했을 때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견뎌내다 보면

언젠가엔 난 장인이 될 사람.



'오늘보단 나은 내일의 작업 만들기'

딱 이것 하나만 해내고자 몰두한다면



미래 언젠가의 나는

일적으로 마음적으로 성숙해

나에게도 여물지 못했을 적이 있었다며 웃고 있으리.



아이 엄마로서, 하나의 사람으로서

모든 것이 능숙한 날이 언젠간 올 것이라는 걸 나는 의심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