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출처 : 뉴스1
한미가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관련 협의를 사실상 마무리했다는 정부 발표와 달리, 관련 내용이 담긴 공동 문서 발표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정상 간 합의 직후 조속한 발표가 예고됐지만, 미국 정부 내부 부처 간 입장 차이로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출처 : 연합뉴스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발표될 예정이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당초 11월 4일 전후로 발표가 예정됐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시점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번 문건에는 한국의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 변화 등이 포함될 예정이었다.
특히 한국이 추진 중인 원자력추진잠수함 도입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원잠 관련 문구의 수위와 구체성 등을 두고 양측 간 조율이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 내부적으로는 관련 부처 간에도 입장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에너지부 / 출처 : 연합뉴스
문제의 핵심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 국가’ 지정이다. 에너지부는 지난 1월 한국을 민감 국가로 분류하며 핵 관련 기술 이전 및 공동 연구에 제한을 두는 조치를 취했다.
에너지부는 국가안보, 핵비확산, 지역 불안정 우려 등을 이유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 사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원잠 추진에 필수적인 핵연료 공급이나 기술 협력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외교 관계자는 “에너지부가 국무부나 국방부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어 조율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특히 원잠 관련 기술에 대한 접근 허용 여부에서 이견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9월부터 원자력 협정 개정 관련 협의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밝혀왔지만, 실제 문서 발표가 지연되면서 원잠 도입 계획도 확정되지 못하고 있다.
부산 입항한 미 핵잠수함 / 출처 :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원잠 도입이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군사용 핵연료는 한미 원자력협정상 미국의 승인 없이는 확보 자체가 어렵고, 주요 기술도 대부분 서방국가들이 독점하고 있어 독자 개발은 현실성이 낮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수석연구위원은 “에너지부는 원자력 기술뿐 아니라 한국 전반에 대한 리스크를 평가했을 것”이라며 “현 시점에서 미국이 핵연료를 공급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해도 에너지부와 국무부 등 부처 간 정책이 다르면 조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 입항한 미 핵잠수함 / 출처 : 연합뉴스
반면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민감 국가 지정은 여러 추정이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원잠은 정상 간 주요 의제로 다뤄진 만큼 지정 자체가 사업 진행에 결정적 제약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에너지부가 기술 이전이나 핵연료 공급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할 경우, 실제 사업 추진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건 발표 시점과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공개되기 전까지, 한국의 원잠 도입 계획은 당분간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