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요구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구글을 포함한 미국 IT 기업들이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반출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보안 처리 등이 미비하다며 결정을 유보했지만, 미국 측은 자유무역협정 위반까지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구글 한국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신청 타임라인 / 출처 : 뉴스1
고정밀 지도는 단순한 길 안내용 자료가 아니다.
건물의 형태, 도로 폭, 고도, 지형 등 공간정보가 상세하게 담겨 군사 기지와 같은 주요 시설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은 11일 국방부 등 관계 부처와 함께 ‘측량성과 국외반출 협의체’ 회의를 열고, 구글이 내년 2월 5일까지 보완 신청서를 제출하면 심의 후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이는 지난 5월과 8월에 이은 세 번째 유보 결정이다.
정부는 구글이 가림 처리와 좌표 제한 등 보안 조건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제출된 신청서에는 해당 내용이 누락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말로만 수용한다고 하지 말고, 명확한 보완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구글맵 / 출처 : 연합뉴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11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한국이 미국 기업의 지도 데이터 요청을 계속 미루면서 디지털 무역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너선 맥헤일 CCIA 부회장은 “지도 데이터 반출을 허용하면 한미 협력을 강화하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서비스산업협회(CSI)도 한국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반출 결정을 미룬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현지 데이터센터 설치를 요구하는 방침도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현지화 요구가 비용 부담을 키우고, 경쟁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구글 / 출처 :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 25년간 1조 원 이상을 들여 고정밀 지도를 구축해 왔다. 이 데이터를 구글에게 넘긴다면, 공공 자산을 해외 민간 기업이 이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뿐만 아니라 구글은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두지 않아 세금이나 법적 책임을 피해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구글의 국내 매출은 11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낸 법인세는 200억 원 수준이다. 같은 기간 네이버는 10조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도 3900억 원을 납부했다.
IT 업계 관계자는 “구글이 한국 데이터를 활용해 자율주행 기술 등을 개발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맵 / 출처 : 연합뉴스
구글은 블로그를 통해 “정부와 보안 조치 이행 방안을 협의하고 있으며, 필요 시 국내에서 승인된 이미지를 구입해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구글코리아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결정하는 사안”이라며 “설치하더라도 데이터 처리 과정은 해외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도 반출이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보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중이다.
정치권과 산업계도 “데이터 주권과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