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조차 침묵한 한낮,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 위로 땀방울이 흘렀다. 출퇴근길 20분을 걸어야 하는 그녀에게 이 무더위는 체력과 인내를 동시에 시험하는 작은 고행이자, 의식 같은 일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걸어가는 그녀를 바보 같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이 여름날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 마음을 담는 일이, 때로는 운명을 수용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그녀의 엄마는 계절마다, 절기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했다. 절기가 오기 며칠 전부터 장을 보고 손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된 재료를 많게는 이틀, 짧게는 반나절 이상을 조리해야 비로소 한 그릇의 ‘별미’가 되었다.
그 정성은 외할머니에게서, 외증조모에게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어머니들은 마음을 음식에 담아 딸들에게로 건넸고, 딸들은 그 모든 것을 삶의 방식으로 배웠다.
봄이 오면 엄마는 산에서 나는 고사리며 취나물을 데쳐 말렸다.
부엌 한쪽, 줄줄이 걸린 봄의 향.
그녀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비릿하면서도 향긋한, 묘한 기운.
그리고 여름, 입맛이 없던 날, 그 나물들이 다시 삶아져 찰밥 위에 올라왔을 때,
그녀는 알았다. 엄마는 봄을 여름까지 데려와 주었다는 걸.
그것은 단순한 반찬이 아니었다. 지친 여름날 봄기운을 상기하며 힘을 얻곤 했다. 그녀는 훗날 알게 되었다. 엄마는 계절조차 미리 준비해 두는 사람이었다는 걸.
여름엔 먹는 것보다 버티는 것이 먼저였다.
엄마는 잘 익은 열무김치, 오이소박이를 찰밥과 내놓았고, 가끔은 소면을 삶아 살짝 얼린 열무국물에 말아주었다.
그러면 소화가 잘 되고 입맛을 잃지 않았다.
기력이 떨어지면 콩을 삶아 두유를 주고,
가끔 올갱이묵이나 도토리묵을 곁들여 주었다.
엄마는 늘 여름을 버티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엄마가 여름을 이겨내는 건 음식 덕분만은 아닐 거라고.
무더위를 견디는 법을 알려주는 비법 같았다.
가을이 오면 엄마는 더 바빠졌다.
한두 번 먹을 요리는 아니었다. 가을은 준비의 계절이었다.
메주를 쑤고, 김장과 동치미를 담갔다.
도매시장에서 사 온 생선과 야채를 손질해 말렸다.
토란을 까고, 약밥을 지었다.
엄마는 가을엔 더욱 부지런해졌다. 먹을 것이 많을수록 마음이 바빠졌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자랐다. 풍요 속에서도 긴장을 놓지 않는 자세.
엄마는 가을을 허투루 보낸 적이 없었다. 그건 단순한 부지런함이 아니라, 책임이었다.
그리고 겨울.
그녀가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계절.
겨울의 맛은 단순했다. 따뜻했고, 깊었다.
그중 최고는 동지팥죽이었다.
엄마는 국산 팥을 삶고 곱게 갈아, 소금만으로 간을 했다.
새알심은 따로 반죽해 삶았다가, 팥죽에 넣어 다시 한번 끓였다.
부드럽고 진한 그 죽 한 그릇은—겨울의 추위도, 마음의 허기도 달래주었다.
그녀는 늘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꼭 웃었다.
식혜도 한겨울 별미였다.
엿기름을 풀어 달큰하게 삭히고, 고두밥을 넣어 끓이던 냄새.
설탕을 조절해 식구들 입맛에 맞춰가며 끓이던 정성.
가끔 단호박을 넣거나 생강을 더해 특별한 맛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겨울은 비축의 계절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을 꺼내 보이는 계절이었다.
그녀는 그 따뜻함을 잊을 수 없다. 엄마의 마음이 가장 진하게 드러나는 계절이었다.
어릴 적, 그녀는 몰랐다.
그 시간이 그렇게 귀한 것인지, 그 음식이 그렇게 따뜻한 것인지.
다만 기다렸을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면—엄마의 음식이 따라왔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결혼을 했고, 엄마의 음식은 점점 먹기 힘들어졌다.
이젠 쉽게 팥죽을 살 수 있고, 식혜도 흔하다.
하지만 맛이 다르다.
엄마의 팥죽처럼 속 편한 맛은 없었다.
엄마의 식혜처럼, 설탕보다 마음이 먼저 스며드는 맛은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요즘, 흔히 말하듯 ‘무던’한 사람이다.
웬만한 일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차갑다 말하지만, 아니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 무던함은 사계절을 지내던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라는 걸.
봄처럼 기다릴 줄 알고,
여름처럼 쉬어가고,
가을처럼 준비하고,
겨울처럼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는 법을—
그녀는 오래전, 엄마의 손끝에서 배웠다.
그래서 힘든 날일수록
그녀는 더 조용해지고, 더 단단해진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딸들은 때때로
엄마의 계절을 되짚으며 성장한다.
삶을 감당하는 방식, 고요한 버팀의 자세까지.
어느새 엄마를 닮게 된다.
어린 날의 그녀는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면—그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엄마의 음식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 음식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마음을 품고 있는지, 그 계절이 얼마나 따뜻하게 준비된 것인지도 몰랐다.
엄마는 늘 조용하고, 말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눌러 삼키고,
삶을 계획하기보다 대비하며,
계절을 살아가기보다 먼저 준비하며 견디던 사람이라 느꼈다.
그래서 때로는 답답했다.
무언가를 참기만 하는 것 같았고, 늘 그림자처럼 조심스러웠기에.
어린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약함’으로만 보았다.
닮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불안한 내일을 조용히 준비하며,
제 자리를 지키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을 때,
엄마를 닮아가는 듯해서 당황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그녀도 엄마가 되었고,
가정을 꾸려가는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의 고집은 단지 전통을 답습하려는 집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고,
침묵은 체념이 아니라 버팀이었다.
왜 그토록 한 끼를 정성껏 준비했는지,
왜 같은 음식을 해마다 반복했는지.
그 모든 건 ‘사랑’이었고,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말 대신 따뜻한 식탁으로 마음을 건네던 그 손끝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녀는 엄마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저 삶을 감내하는 무던한 태도만은 고스란히 닮았다.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이제는 미련도 없다.
어린 시절의 반감도,
몰랐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도.
오히려 그녀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절을 맞이하고, 가정을 꾸리고, 자신을 지킨다.
불평 대신 준비하고, 후회 대신 감내하고,
계절이 오는 것을 미리 맞이하듯,
삶이 밀려와도 그 자리를 지킨다.
그녀는 이제, 자신만의 방식으로 견디며 사랑하고 있다.
단지,
엄마의 마음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의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어느새 가을이 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