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마치 꿀벌 같다.
딱히 부지런해서 그런 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공상에 빠져 두발이 땅에 닿지 않고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마치 고양이처럼 한가롭고 도도하게, '아, 오늘은 생각 안 해.' 같은 표정으로.
조금 먹고, 우아하게 기지개를 켜고, 약간의 놀이와 자신을 가꾸는 삶.
그렇게 지내기에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너무 많다.
현실 속 그녀는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아침 7시 즈음이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네 살 막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놓은 뒤에는 가만히 앉아 있을 틈도 없다.
요일마다 달라지는 작은 일정에 따라 움직인다.
그림을 그리고,『논어』를 조용히 필사하며, 독서 모임을 위해 책장을 넘기고, 한 자 한 자 글을 쓴다.
오후가 되면 학생들의 공부를 챙긴다.
수학 문제집을 펼치고, 국어 교과서를 들여다보고,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이면 가사와 책 사이를 오가며 밀린 일들을 처리한다.
이 반복되는 일상에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늘 배경처럼 깔려있다.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에너지를 빼앗는 앱처럼.
하루가 수식, 브런치 글, 약간의 아이 걱정,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 등등 다채로운 멀티태스킹으로 힘겹게 굴러간다.
언뜻 보면 혼란스럽고 일관성 없어 보이는 것들이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일관된 삶이다.
꿀벌이 주어진 임무에 몰두하듯 하루 종일 한 가지만 생각한다.
'Amor Fati'
가끔 빈백에 누워 이런 생각이 스칠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사는 거지?'
생각의 꼬리가 이어지면 대단한 깨달음이 올 것 같지만, 대부분 배가 고파져 야식을 한다.
탄수화물, 당, 카페인. 삶의 연료이자 기호품으로 고단함을 달랜다.
누군가는 빡빡하고 계획적인 듯, 느긋함 보다는 강박이 더 많은 삶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생의 중반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이 고양이가 아닌 꿀벌이라는 걸.
종종 중학생 시절 별명이 ‘과로사’였다는 걸 떠올리며, 작게 웃는다.
'아, 그랬지. 천성이었지.'
매일 꿀벌처럼 이 꽃 저 꽃을 오가며, 자신만의 꿀을 모으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도,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하루가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다만 아주 가끔,
자신이 만든 작은 한 방울의 꿀이
누군가의 마음을 스쳐 가 인생의 달콤함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