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객관화 연작 에세이 2부
우리는 모두 타인의 거울이다.
내가 한 말, 내가 보여준 태도는 상대에게 반사되어 그 사람의 감정과 반응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거울을 오가며 존재를 인식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내가 나의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한다.
“너는 왜 항상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 마음은 생각도 안 해?”
이처럼 갈등의 장면에서 자주 오가는 말들은, 상대를 향해 내던지는 화살과 같다.
그 말들은 종종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채 상대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방식이며 반복되기 쉽다.
이런 갈등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자기객관화’의 부재다.
1편에서 말한 자기객관화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자기객관화 는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거리 두고 바라보는 힘’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성찰(self-reflection)’이나 ‘메타인지(metacognition)’와 연결 지어 설명한다.
John Flavell(1979)은 메타인지를 “자신의 사고 과정을 자각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내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그 감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것을 통제하거나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자기객관화는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두는 일이다.
그 ‘나’는 때로 내가 감추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모습을 고스란히 비춰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흔히 이 과정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 자신을 비추는 거울 없이도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삶에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_타인을 자신의 거울삼는 것_이다.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만 반응하면서, 그 안에 비친 왜곡된 자아상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때부터 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감정이 고조되는 갈등의 순간, 사람들은 보통 ‘내가 옳다’고 믿는다.
이 판단은 언제나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자기감정을 진실로 여기면서
상대의 감정은 가볍게 치부하거나 무시하곤 한다.
심리학자 Bernard Weiner(1985)의 귀인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나 잘못을 외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심리 기제에서 비롯된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지 못하기에, 문제가 생겨도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기 쉬운 것이다.
이처럼 자기객관화가 결여된 삶은 결국 ‘공적 마인드’까지 무너뜨린다.
공적 마인드란, 타인의 권리와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태도를 말한다.
진정한 공동체는 감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자기객관화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자기 자신을 해석하는 존재(Dasein)”라 했다.
삶이란 결국, 스스로를 비추고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만 의미를 얻는다.
그런데 이 거울이 없으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자신을 구성하고 그 시선이 왜곡되었을 경우, 스스로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자기객관화가 결여되면, 그 빈자리를 종종 얄팍한 자기애가 채운다.
자기애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 객관화 없이 작동할 때
그 사랑은 쉽게 _방어적 자존심_으로 바뀐다.
“내가 틀렸을 리 없어.”
“나는 늘 좋은 의도로 말했어.”
이런 태도는 갈등의 본질을 외면하고,
오히려 문제를 되풀이하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애적 방어(narcissistic defense)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자신을 강하게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는 불안이 그 뿌리에 있다.
이 자기애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 없이
모든 갈등을 '나를 몰라주는 문제'로만 해석하게 만든다.
그 결과, 갈등은 깊어지고 인간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실인 것처럼,
상대가 느끼는 감정도 진실이다.
그 둘 사이를 잇는 다리가 바로 자기객관화다.
이 다리가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고 모두 ‘상처 입은 채, 자신만 피해자라고 믿는’ 갈등 속에 갇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일지 모른다.
“나는 나를 얼마나 보고 있는가?”
“나는 나를 어떤 거울로 비추고 있는가?”
다음 편에서는
너무 강한 자기객관화가 만들어내는 ‘자기소외’의 함정을 다룰 예정이다.
거울이 없어서 관계가 깨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울에만 매달리다가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한글 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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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주환, 《회복탄력성》,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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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사 누스바움, 《감정 수업》, 예문
6. 스콧 스토셀, 《나는 왜 늘 불안한 걸까》, 알에이치코리아
7. 카렌 호나이, 《자기분석》, 문예출판사
《참고문헌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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