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소망의 성취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어릴 적 나는 매일 밤 꿈을 꾸었다.
꿈속은 언제나 환상과 모험이 가득했다.
요즘의 화려한 판타지 영화보다도 흥미진진했지만, 아이였던 나는 그 끝없는 꿈이 때로는 버거웠다.
매일 이어지는 낯선 세계에 지쳐, 차라리 꿈꾸지 않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내가 꾼 꿈들은 단순한 환상이라기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두려움과 바람이 얽혀 만들어낸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다.
보통날처럼 동네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랐다.
아카시아 꽃송이를 따서 꿀을 빨면, 달콤한 향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숲 속 공터에서 나뭇가지로 글씨를 쓰고, 숨바꼭질하며 뛰어놀았다. 그런데 공터 끝, 어른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하던 숲 속에서 이상한 약수터를 발견했다.
둥근 수돗가처럼 생긴 곳 위로 검은 형체가 어른거렸다.
가까이 다가가니 형체의 눈동자가 빛났다. 흰자위는 기묘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다.
“어디서 온 누구냐?”
낯선 물음에 대답하자, 검은 형체는 내가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말끝마다 컹컹대며 기분 나쁘게 웃는 소리에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몸을 돌리려는 순간, 땅이 꺼지며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허공에서 메아리치던 웃음소리가 가슴을 조여왔다. 숨이 막히던 순간, 다시 공터에 서 있었다.
친구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눈빛은 낯설게 번뜩였고, 나는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라고 느꼈다.
나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뻗어 나를 잡으려 했고, 웃음소리는 등 뒤에서 따라왔다.
간신히 숲을 빠져나와 집에 도착했을 때, 복슬이가 반겼고, 엄마의 부엌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돌아본 엄마의 얼굴은 낯설게 일그러져 있었다. 눈과 입꼬리가 이상하게 올라간 채, 나를 모른다고 했다.
순간, 나는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된 듯 울음을 터뜨렸다.
내 눈물이 집안을 가득 채우자, 모든 것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가족은 자취를 감추었고, 오직 복슬이만이 남았다. 그런데 복슬이는 어느새 조랑말만큼 커져 있었다.
나는 복슬이 등에 올라타 푸른 하늘로 날아올랐다. 눈물은 사라지고, 바람은 상쾌했다. 복슬이는 나를 엄마가 있는 집으로 데려다주는 듯했다.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의 성취’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꿈은 늘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돌아가고 싶다는 그리움을 동시에 품고 찾아왔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변해버린 엄마의 얼굴이었고, 내가 간절히 바랐던 건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꿈속에서조차 나는 두려움과 소망 사이를 오갔다.
그러고 보니, 꿈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꿈은 어린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내가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마음의 진실을 보여주는 은밀한 극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