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나를 숨 막히게 해요

'착함'의 빌런

by 미네르바의 올빼미


연재 속 에피소드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관점에서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나 친절하다.

늘 타인을 배려하고 따뜻한 말을 건넨다.

그의 웃음에는 그늘이 없고, 목소리는 부드럽다.

그와의 대화는 봄날의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려,

잠시라도 마음을 맑게 한다.


"미올 님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하시는 말에 내공이 느껴집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말없이 청소를 하던 미올은 빗자루질을 멈추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적의라고는 눈곱만큼도, 그러나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이었다.

플러팅이라기엔 이질적이었다.

그의 말로 감정보다는 '자기 연출'을 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착해야 했다.

그의 착함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예의였다.


며칠 전의 일이다.


"친빌 님, 어제 회의록이 제가 정리한 것과 다르던데요?"

"아, 네. 4번 안건이랑 5번 안건은 상호보완적이라 같이 정리하면 효율적일 것 같아서요.

회의 결과도 달라진 건 없으니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그의 말은 논리적으로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그는 미올과 함께 정리한 합의를 묵살한 셈이었다. 회의록은 협의의 결과물인데, 그는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판단을 끼워 넣었다. 미올은 단전 깊은 곳에서 분노가 밀려오는 걸 느꼈다.


"친빌 님, 어제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회의 안건별 담당도 다르니 임의 수정은 곤란합니다."

"아, 그렇군요. 일을 덜어드리려다 오히려 일을 벌였네요. 죄송합니다."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쓸어내렸다.


그의 말투에는 미묘한 기류가 있었다 —

'나는 착한데, 당신은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나요?'

그의 웃음이 오히려 미올을 더 움츠러들게 했다.




그는 미올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호감, 연민, 호의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건네는 호의에는 존중이 빠져 있다.

그는 상대의 마음을 묻지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도와주며, 상대의 자율성을 그 친절 속에 가둬버린다.

미올은 점점 숨이 막혔다.

그의 착함 속에는 묘한 통제가 있었다.



도덕적 우위에서 베푸는 '배려'는, 상대를 약자로 만든다.

'착함'은 무엇일까?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말했다.


착한 사람은 약자의 전략에서 태어난다.


그의 착함은 타인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력화시켜 안전하게 남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는 분노하지 못했고, 불편함을 참았으며, 불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지웠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감정을 '정동(affectus)'이라 불렀다.


정동이란 인간의 행위 능력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상태.


착함이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생명력까지 억누른다면, 그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대체로 안전하고 싶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고,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게 두렵다.


하지만 관계는 일방적일 수 없다.


진짜 성숙한 관계는 '착함'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분노를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올바르게 분노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착한 사람이 아니라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책임지는 사람.

그때 비로소 관계는 건강한 틈을 가진다.



미올의 독백
그의 친절이 나를 숨 막히게 해. 나는 착한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


작가의 말

'착함의 빌런'은 도덕의 탈을 쓴 무력감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얼마나 많은 관계를 왜곡시키는가.
착함이 누군가를 구속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선이 아니다.


@가스라이팅 빌런 — "당신의 마음은 당신 것입니까"

착함이 관계를 묶는 '끈'이라면, 가스라이팅은 그 끈을 '목줄'로 바꾼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로 상대의 감정을 흔드는 사람들. 그들은 직접적인 폭력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당신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다음 편에서는 '심리적 통제의 빌런',

그들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지적 면역력'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