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속 에피소드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관점에서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입니다.
새로운 팀장이 부임해 왔다.
그는 멀끔하고 세련된 인상에 언제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기소개를 하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회의 내내 그는 각 담당자의 보고를 주의 깊게 들었다.
마지막으로 미올의 브리핑이 끝나자, 팀장은 회의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미올의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한 장씩 넘기던 그는 어느 부분을 손끝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좋아요. 우리 팀 일들이 명확하게 보이네요. 그런데…”
말을 멈추더니 그는 종이를 가리켰다.
“이 수치는 윗선에서 보기에 공격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공격적이라니요, 저는 실제 데이터를—”
미올이 조심스레 항변을 시작하려 하자, 그는 한쪽 손을 들어 토닥이는 듯한 손짓과 함께 빙긋 웃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어떤 인상을 받을지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그 말에 회의실 공기가 부드러워졌다. 누군가가 재빠르게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팀장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따라 웃었다.
“이 제안서도 좀 높게 책정된 것 같네요. 실행비용을 다시 꼼꼼히 체크해 보세요.”
그의 말이 끝나자,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미올에게 속삭였다.
“지난번엔 부풀리라더니, 이번엔 줄이라고? 예산이 고무줄이야?”
팀장은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정책은 항상 유동적이죠. 윗선은 항상 ‘맥락’을 보거든요.”
그 ‘맥락’이라는 단어 뒤에 ‘이익’이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건 회사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회의가 끝나자 동료들이 커피를 들고 미올 옆에 모였다.
“이번 팀장 괜찮지 않아? 피드백도 섬세하고.”
“그래, 예전처럼 윽박지르진 않으니까 분위기도 좋고. 그게 어디야.”
“우리야 맞추는 사람들이지. 요즘 시국에 튀면 안 돼.”
그 말들은 조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가만히 있어라, 그게 현명한 거다.
사무실은 부드러웠지만, 미올은 이상한 피로감을 느꼈다. 가빌이 휘두르던 폭력은 차라리 명확했다. 하지만 새로 온 팀장은 ‘합리성’이라는 윤활유로 조직의 관행을 매끄럽게 돌리는 자였다.
그날 밤, 모니터 불빛만 남은 사무실에서 미올은 보고서를 다시 바라봤다.
“효율성 향상” “조율” “이미지 개선”
단어들은 현실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거짓을 정당화하는 주문처럼 보였다.
인간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원할 뿐이다. ¹
그녀는 견딜 수 있는 허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까, 아니면 견딜 수 없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
순간,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읽는 사람이 어떤 인상을 받을지도 중요하다.”
그 말은 비즈니스의 격언처럼 들렸지만, 사실상 이렇게 번역되어야 했다.
“진실보다 위계가 있다. 우리는 사실을 다루는 집단이 아니라, 감정을 관리하는 집단이다.”
미올은 어둠 속에서 한 문장을 떠올리며 천천히 컴퓨터를 껐다.
“거짓된 평화가 정직한 불화보다 더 위험하다.” — 스피노자
'나는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이제 살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새벽빛이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번졌다.
그녀의 얼굴은 피곤했지만, 눈빛은 맑았다.
부드러운 통제 속에서 한 사람의 결심은 조용한 저항이 되었다.
¹ 니체 — 풀이 : 인간은 진실보다 편한 거짓을 택한다. 진리를 보는 눈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