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을 정할 당신에게
정말이지, 오늘은 매일 보는 하늘이 유독 예쁜 날이었다.
『모순』에서, 진진이의 이모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기대하고 설레어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순수함은 사라진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설렘 하나를 고수해 올 수 있었을까. 나도 문득 생각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순수한 웃음은 무엇인지.
나에게도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무언가가 마음속 어딘가 자리하고 있을까, 하고.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진진이 이모가 허탈함과 무의미함 속에서도 찾으려 했던 설렘과 순수함이, 나에게는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날. 누군가에겐 고대하는 일이고,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일 수도 있는, 그런 평범한 하루가 내게는 지루한 일상 속 의미를 찾아주었다.
오늘 내가 한 일은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카페에 앉아 『모순』을 읽은 것이다.
주인공과 같은 나라, 같은 나이, 그러나 닿을 수 없는 먼 시대를 살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며, 스물다섯의 나와 스물다섯의 진진을 겹쳐보며, 아주 평범하고 지극히 혼자인 하루를 보냈다.
혼자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오늘은 그냥 스쳐 지나칠 법한 어린아이의 말솜씨를 가만히 들었다.
장난감을 사기 위해 징징거리기보단, 뻔뻔하고도 귀여운 말투로 어른을 설득하는 아이는, 아직 철없는 나보다 오히려 더 어른스러웠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자기 위안을 늘어놓는 나보다 훨씬 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던 하루였다.
그런 날이었다.
30초까지 계획하는 아빠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그 피가 흐르는 계획형 인간이다.
여행지에서 다음 여행을 생각하느라 현재를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아빠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시간에 대해서라면 나도 예민한 사람의 역할을 물씬 해낸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계획한 여행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연히 발견한 평범함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내 취향으로 인테리어를 꾸민 카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가져간 책 『모순』을 읽으며 특별한 시간을 얻었다. 밥 한 끼 값이나 하는 디저트와 커피를 사서 억울하지 않으려 마음껏 행복해하기로 했다.
‘행복을 돈으로 산다’, ‘시간을 돈으로 산다’는 부자들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카페에 들어서며 비싼 디저트와 커피를 고른 것은, 어쩌면 그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돈으로 행복을 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래서 행복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던 날.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진짜 길을 찾는 법을 알듯,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선 혼자 있어봐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해준 날이었다.
모두에게 운수 좋은 날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하루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그 선택의 순간이 운수를 정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말을 좋아한다.
운수가 없더라도 살아지는 것이 삶일 테니까.
그리고 그 운수의 의미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