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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r 24. 2024

1학년 꿀벌들의 피땀눈물

드디어 우리 반 벌집에 꿀이 가득 찼다.

‘성실’ ‘참여’ ‘노력’ ‘배려’ ‘안전’ ‘인성’ ‘협동’ 꿀이 빼곡하다.

선생님은 얄밉다.

한꺼번에 많이 주실 것이지 매일 찔끔찔끔 한 두 개만 붙여준다.

이걸 모으려고 우리가 얼마나 애썼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아침에 친구들을 만나면 떠들고 얘기하고 싶다.

그럴 때마다 그러신다.

“어머, 학교에 와서 바로 해야 하는 것이 있을 텐데. 잊어버린 친구가 있나 본데. 그럼 달콤한 꿀 못 모을 텐데.”

순식간에 조용히 지는 교실.

모두 슬그머니 가방에서 책을 거다.

옆 친구가 선생님한테 간다.

“선생님 책 없는데요.”

그럼 선생님은 어제와 똑같은 말을 하신다.

“선생님 책을 가져다 읽으면 돼요.

그런데 어제도 너 그거 물었는데? 또 잊어먹었구나.” 


1교시는 국어시간이다.

요즘 우리는 교과서를 공부하고 있다.

어떤 친구는 공부가 하기 싫어서 월요일에 학교 올 때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해보니 어렵지는 않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자세가 삐딱해지고 허리가 새우처럼 굽어진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선생님은 그러신다.

“어머, ** 자세 너무 좋다. 허리가 꼿꼿하고 눈도 선생님을 쳐다보고, 발도 예쁘게 모았네. ”

돌아보니 진짜로 **는 자세가 훌륭하다.

칫, 선생님한테 잘 보일라고 그러는 거 다 안다.

나도 엉덩이를 의자 뒤쪽으로 붙이고 허리를 세워본다.

그럼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노력’ 꿀을 붙여준다. 

쉬는 시간이다.

“2반 공부하고 있으니까 사뿐히 조용히 화장실 다녀오세요.”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우리를 지켜보신다.

달리고 싶다.

소리치고 싶다.

그런데 자꾸 ‘안전’이라는 꿀로 ‘배려’라는 꿀을 보여주신다.

아이고 저건 붙여야겠고, 참아야지.

2반이 공부하고 있다니 떠들면 안 되지. 

마스크 쓰고 있는 것만 해도 답답한데 맘대로 행동도 못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어린이집이 유치원이 그리울 때도 있다.

하지만 학교도 좋다.

일단 건물이 크다.

5층까지 있고 교실도 아주 많다.

급식실도 깨끗하고 멋지다.

따뜻한 급식은 최고다.

체육관은 아주 거대하다.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는 책이 선더 미처럼 많아 신기했다.

선생님은 **초등학교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고 하신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고 싶은 대로 못하니 답답하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다녀왔다. 

쉬도 안 마려운데 나갔다 들어왔다.

“도서관 책 반납이나 빌려올 사람 다녀오세요.”

선생님 말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나갔다.

친구들은 그 시간에 천사점토를 가지고 노는데 난 도서관 다녀오는 게 더 좋다.

사실 책 빌리려 가는 게 아니고 몸이 근질거려 도서관 구경하고 오는 거다.

그런데 오늘 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도서관까지 따라오셨다.

“책을 반납도 안 하고, 책을 빌려 오는 것도 아닌데 도서관에 왜 가나요?”

“선생님 읽고 싶은 책이 없는데요.”

“그럼 가지 말아야죠. 내일부터는 반납 안 하고 빌리지도 않을 거면 도서관 가지 마세요.”

칫~~~ 우리 엄마도 옷 사려고 백화점 갔다가 그냥 올 때 많은데 그럼 옷 안사면 백화점 못가나?

선생님은 바보다.

어떨 땐 되게 똑똑해 보이다가도 요럴 땐 내가 가르쳐주고 싶다.

그래도 뛰지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도서관 다녀와서 ‘노력’ 꿀을 받았다. 


어제 봄 수업시간, 숨은 그림 찾기를 했다.

뭐든 천천히 꼼꼼히 하는  **.

답답해서 가르쳐주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시며 찡긋하시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기다려주자고~~.

**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림을 다 찾았다.

선생님은 ‘참여’ 꿀을 붙여주셨다.

‘빠름’ 꿀은 왜 없는 거지? 있다면 나 덕분에 꿀 흘러넘칠 텐데. 

급식시간.

오늘도 약속을 지키느라 힘들었다.

친구한테 말하고 싶은데, 선생님한테 말하고 싶은데, 일어서서 돌아다니고 싶은데, 그 ‘꿀’ 때문에 참았다.

이를 악물고 잘 참고 있었다.

그런데 **가 급식실에서 뛰어다녔다. 

아이고~~~~ 오늘 망했다.

풀이 죽어서 교실로 올라온 우리.

선생님이 빙긋이 웃으신다.

밉다.

정말, 왜 웃으시냐고.

“오늘 꿀 하나 못 모아서 속상하지?

기회를 줘 볼까요?”

“네~~!!”

목청껏 소리 질러 본다.

“숫자 릴레이 게임 어제 우리 반 기록이 25초였지요?

그 기록 오늘 단축하면 ‘협동’ 꿀 붙여줄게요.”

친구들이 차례대로 한 명씩 1부터 19까지 지그재그로 숫자를 외치는 거다.

어제는 목소리 작은 친구 때문에, 한 눈 팔아 멍하니 가만있는 친구 때문에 답답했다. 

그 친구들에게 뭐라 하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서로 비난만 하면 절대 성공 못한다고 하셨다.

몇 번이나 해서 겨우 25초 걸려 성공했다.

목소리가 커야 되고 실수한 친구한테 뭐라 하면 안 된다.

잘할 수 있을까?

가슴이 콩닥콩닥.

드디어 시작.

1,2,3,4,5....

순조롭다.

어제 잘 못했던 **도 해냈다.

그래, 이렇게만 끝내자.

17,18!

마지막 **도

19!

시계를 보니

15초였다.

와~~ 대박! 어제보다 10초나 줄였다.

친구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다.

우리가 해낸 것이다.

선생님은 ‘협동’이라는 꿀을 마저 붙여주셨다.


우리의 피 땀 눈물 ‘꿀’이 한판 다 찼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분홍 황토색 빼곡한 걸 보니 가슴이 이상하게 찌릿했다.

우리반 아니 친구들이 멋지다. 

우리는 내일 아침부터 운동장으로 나갈 것이다.

신나게 뛰고 소리 지를 것이다.

친구들아 고마워.

함께 꿀을 채워줘서.

그런데 다음 소원은 뭘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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