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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r 18. 2024

인생 첫 선생님

나의 첫 선생님은 50대를 훌쩍 넘긴 남자 선생님이셨다. 아직도 얼굴이 또렷이 기억이 난다. 늘 회색 빛이 도는 양복을 입으셨고 키가 크셨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무섭지는 않았는데 시골에서 양복 입은 어른은 낯설어서인지 앞에만 가면 얼어버려서 쭈뼛쭈뼛거렸던 걸로 기억난다. 

 평범한 아이의 평범한 학교생활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난생처음 받아쓰기라는 걸 했는데 열 개중에 반도 못 맞아서 나머지 공부란 걸 했다. 그런데 그게 아주 충격이었다. 친한 친구들은 가방 메고 교실을 나가는데 나만 혼자 남는다는 것 이상야릇한 감정이 들었다. 틀린 글자를 10번씩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교실이 엄청 크고 넓어 보였고 손가락도 너무 아프고 눈에서는 자꾸 눈물이 코에서는 콧물이 나왔다. 나중에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서 딸꾹질까지 났다. 공책이 눈물에 젖었고 글씨를 쓰니 자꾸 찢어졌다. 교무실에 가셨던 선생님이 한참만에 돌아오셨는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가만히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가방을 주섬주섬 싸주시며 집에 가서 써오라고 하셨다. 

교실 창가에는 친구들 대여섯 명이 다닥다닥 붙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고스란히 다 봤을 것이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아서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한 명의 친구가 교실을 못 나오면 몽땅 귀가가 늦어지는 의리파 친구들이었지만 그날은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 이름 석자만 겨우 쓰고 들어간 학교에서 처음 맛본 좌절이었고 치욕이었다. 아~~ 공부를 안 해 가면 이런 느낌을 받는구나. 당시 그 충격은 어린 내게 너무 컸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나의 첫 선생님에게 두고두고 정을 못 붙이는 계기가 됐다.


 나의 첫사랑 선생님은 4학년 때 만난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교대를 막 졸업하고 부임하신 분이었는데 얼굴도 예뻤지만 목소리가 좋았다. 선생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예쁜 짓만 했다. 엄마 화장대에서 새 거울 새 화장품 등 멋진 게 있으면 모조리 포장해서 선물로 갖다 드렸다. 선생님의 예쁜 옷, 그리고 예쁜 교실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실 뒷문 옆 거울에 붙어있던 나비 몇 마리는 어디서 요런 걸 구했을까 너무 궁금할 정도였다. 거울 앞에 설 때면 나도 얼른 커서 선생님처럼 예쁜 옷 입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나비가 날아다니는 예쁜 교실도 갖고 싶었다. 나의 첫사랑 선생님은 결혼을 하시면서 서울로 떠나셨다. 웨딩드레스 입은 선생님과 찍은 사진은 아직도 앨범 한 귀퉁이에 고이 모셔져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래 맨 왼쪽이 나다. 


첫. 선. 생. 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비칠까. 그리고 어떤 선생님으로 남길 바라고 있나. 

 오늘은 친구들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자기감정을 이야기 하고 또 사과하는지를 배웠다. 친구의 어떤 행동이나 말 때문에 속상했거나 화났거나 슬펐던 경우 없냐고 하니 여기저기서 손을 든다. 

-그럼 우리 앞에 나와서 자기 감정을 친구에게 말하고 또 사과할 수 있는지 연습해볼까. 아이스크림 이름은 바로 ‘행감바’야. 친구의 어떤 행동에 내 감정이 어땠는지 자세히 말하고 바라는 점을 얘기해주는거야. 그리고 사과할 친구는 약을 먹는데 그 이름은 바로 ‘인사해약’이야. 나의 잘못된 행동이나 말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결하기로 약속하는 거지.

어제 **이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말한 친구를 불러내 실습을 시켰다. 

“어제 너가 나한테 바보라고 해서 기분이 아주 나빴어. 나한테 사과해줬으면 좋겠어.”

“어제 너한테 장난이었지만 바보라고 해서 진짜로 미안해. 다음부터는 장난으로라도 안할게.”

“선생님, 돌봄교실에서 2학년 언니들하고 놀려고 했는데  한 언니가 ‘넌 빠져’라고 해서 되게 속상했어요.”

-음, 그럼 오늘 언니한테 가서 너 속상한 마음을 행감바로 전해볼래? 우리 연습해보자. 누가 2학년 언니 역할을 할래?

“저요! 저요!”

“언니, 어제 나는 언니들이랑 같이 놀고 싶은데 언니가 ‘넌 빠져’라고 해서 슬펐어. 다음부터는 좀 더 친절하게 말해줬음 좋겠어.”

“어제 너한테 ‘너 빠져’라고 한 건 사실이야. 너가 슬펐다니 미안해. 다음부터는 ‘이번 말고 다음에 같이 놀아줄게’라고 예쁘게 말할게.”

공식 적용이 어려운 친구들은 선생님의 말을 따라하면서 배웠다. 

유치원때 자기 이름을 자꾸 엉뚱하게 불러서 화났던 일도, 놀이터에서 때렸던 오빠한테도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을 해봤다. 


 이 방법이 훈련만 되면 아이들은 교사 중재 없이도 친구 사이의 갈등을 해결한다. 이런 형식적인 감정 표현과 인정과 사과가 무슨 큰 도움이 될까 싶지만 아이들은 이 것만으로도 앙금을 털어낸다. 순수한 아이들이라서 그렇다. 내친김에 학교폭력 예방 교육까지 해본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예쁜 말 연습을 말판놀이로 했다. 

 책상을 교실 양쪽으로 밀고 교실 운동장을 만들어 ‘아이엠그라운드 친구이름 대기’도 해보고 ‘친구를 사랑하십니까’ 게임도 했다. 친구들이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표정이 환하게 바뀌는 아이들. 짓궂은 녀석들이 자꾸 친구 이름 대기에서 ‘유현미’를 부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이 힘들어 하면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발을 구르면서 신나 어쩔 줄 모른다. 그래, 너희들이 즐겁고 행복하다면야. 


 세월이 흐른 먼 훗날 아이들 기억 속의 첫 선생님은 ‘우리를 엄청 사랑했던 선생님’으로 남고 싶다. 나,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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