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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Mar 16. 2024

친구를 구하라

“클라이밍 했어요.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아빠랑 마니산 등산 갔어요. 계단이 많아서 다리가 엄청 아팠어요.”

“농구 하느라 다리에 멍 들었어요.”

“고양이 카페에 갔는데 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복면가왕 봤는데 내가 아는 노래도 나와서 따라 불렀어요.”

“제 동생은 정말 귀찮아요. 맨날 나만 따라 다녀요.”

아이들의 주말 이야기는 재잘재잘 끝도 없다. 학교 오면 뭐가 좋냐고 물어보니 이구동성으로 “친구가 있어서 좋아요!!” 한다.

“근데 우리반 **이는 나랑 놀다가도 다른 반 **가 오면 걔랑만 놀아요.”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도 벌써 생겼나보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은 친구 프로젝트 해보자.


첫 시간은 ‘친구를 모두 잃어버리는 방법’

그림책 표지를 보고는 손을 든다.

“선생님, 제목이 이상해요.”

“저 여자 아이 얼굴이 화 난 것 같아요.”

“장난감을 모두 다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데요.”

책 속 주인공은 이기적인 고집불통이다. 아이들은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미운 모습과 행동을 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문제 행동을 알게 하는 그림책이라 학기초 단골메뉴다.

-친구를 모두 잃어버리고 싶어? 그렇다면 요렇게만 하는거야.

절대로 웃지 말고, 맛있고 좋은 건 무조건 혼자서만 독차지하고. 줄 서 있는데 새치기 쓰윽 하는 것처럼 반칙하고, 신경질 나면 엉엉 울기, 친구를 괴롭히는 심술꾸러기 되고, 친구의 잘못을 사사건건 고자질 하는 거지.

“선생님? 그럼 친구가 잘못했는데도 선생님한테 얘기하면 안돼요?”

-음, 고자질은 친구가 선생님한테 야단맞고 혼나길 바라는 나쁜 마음으로 일러주는 거야. 하지만 친구가 다칠까 걱정돼서 위험한 행동을 알려주는 건 고자질이 아니지.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 반짝 빛난다. 어떡하면 좋은 친구가 될지,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될지 역설적으로 깨닫고 있는 모양이다. 그동안 알게 된 우리반 친구 8명 이름 적어보라 하니 빼곡히 다 적는 아이도 있고 겨우 한 두 명만 적는 아이도 있다. 이름표를 흘깃거리며 “너 이름이 뭐야?” 물으며 삐뚤 삐뚤 빈칸 메운다. 짝지어서 올챙이송 무용을 하는데 **가 자꾸 한 친구하고만 하고 싶어 한다. 우리반 똑순이 **, 가만 있을 수 없지.

“친구도 혼자서만 독차지 하려고 하면 안돼. 다른 친구로 바꿔 가면서 율동 하라고 선생님이 그랬잖아. 반칙이야 그것도.” 금방 배운 그림책 이야기를 아주 야무지게 써먹는다. 


친구 프로젝트 두 번째는 ‘친구를 구하라’

‘유괴 예방’ 관련 수업 후 실제로 한명씩 나와서 연습 하는 시간을 가졌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이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선생님은 아주 예쁘고 친절한 누나야. 자, 이제 진짜 납치범 연기 들어간다.

“**야, 너 참 잘생겼다. 내가 이 동네 처음 이사 와서 말이야. 길 좀 가르쳐주겠니?”

“네. 가르쳐줄게요. 어디요?”

여기저기서 “안돼!가르쳐 주지마!” “**아, 너 잡혀가” 난리가 난다.

“그럼, 누나 차가 저 쪽에 있는데 거기까지 가자. 강아지도 있다. 엄청 귀여워.”하고 손을 잡아 끌었다. 어라? 그런데 이 녀석 아무 생각없이 줄줄줄 따라 온다.

“**아~~~~ 가지마!” “왜 따라가!” “안돼!” “위험하다고!! 예뻐도 납치범일 수 있다고.” “큰일 나, **아!” 여기저기 고함 소리. 

**이는 결국 납치범 선생님 손에 이끌려 교실 앞문에서 바깥으로 사라졌다. 모두 책상을 두드리며 분해한다. 그리고는 깔깔깔 웃는다.

-자, 이번엔 어떤 아저씨가 너희들을 힘으로 끌고 갈 땐 어떡해야 하는지 연습해보자. 덩치 큰 **이 보조 선생님이 납치범 역할 한다. 이번엔 **이가 나와 봐. 

**이 보조선생님도 진지하게 수업에 동참해 주신다. 보조 선생님은 **이를 번쩍 안으려 한다. **이는 안끌려 갈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책상을 잡아!” 여기저기서 훈수다.

결국 힘센 **이 보조 선생님이 질질질 끌고가니 갑자기 아이들이 우르를 몰려나온다. 친구를 잡아당기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을 마구 때린다. 아이들의 등살에 얼릉 도망가시는 **이 보조 선생님. 한바탕 소동 끝에 납치범을 무찔렀다며 의기양양 신나는 아이들. 잘했다 잘했어. 


친구 프로젝트 마지막은 ‘대왕 문어를 만들어라’ 

네 명씩 모둠을 만들었다. 색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풀칠해서 고리를 만들어 연결하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며 설명해본다. 

“이해 갔니?”

“네. 이해 왔어요.” 

이해 오다니!!

가위질과 풀칠이 아직 서툰 아이들도 보인다. 처음에는 요령도 없던 녀석들이 “너는 색종이 막대만 만들어, 나는 고리를 만들게.” “그럼 난 연결할게.” 분업까지 터득해서는 호흡을 척척 맞춘다.  작은 고리가 연결되어 길다란 다리가 완성되자 “우리 팀 다리가 제일 길어”라며 우쭐한다. 대왕 문어에 다리가 하나씩 붙여진다. 친구와 소곤거리고 서로 쳐다 보며 까르르. 역시 친구와 함께 놀이하듯 배우는 시간이 좋다. 

나를 봐 주는 친구, 내게 말 걸어 주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학교 오는 발걸음은 신난다.

우리는 지금 날마다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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