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롱쌤 Jun 16. 2023

처방은 '돋보기'였네  

나이듦, 온몸으로 거부했더니 극심한 두통으로 경고

일주일 전부터 눈이 침침했다.

특히 1-2교시 수업이 힘들었다.

아이들이 뿌옇게 보이고 글자가 아른거렸다.

"선생님, 경희궁 승정전 아니고 숭정전인데요!"

"어? 승정전 아냐?"

국어책을 읽는데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며 인상을 찌푸렸다.

눈곱이 끼였나 뻑뻑한 눈을 비벼도 보고

인공눈물을 넣어봤다.

소용이 없다.

괜찮아지겠지.

그런데 오늘은 급기야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하교하던 우리 반 놈들이 머리 쥐 뜯는 나를 보고 왜 그러냐고 묻는다.

“아파서 그래.”

“어디 부딪히셨어요?”

"아니, 눈이 피곤하더니 두통이 온다."

"눈이 안 좋은데 왜 머리가 아파요?"

"그게... 응... 아니다. 얼릉가."

열세 살 인생이 뭘 알겠냐.

하루종일 안 보이는 눈으로 너무 애쓴 탓 같다.

시원한 바람을 쏘이고 초록색을 보면 좀 나을까 싶어

나무 쳐다보며 바깥바람도 쐬었다.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안 되겠다 싶어 집 근처 안과로 달려갔다.

“양쪽 눈 시력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네요.”

-음, 그건 알고 있고요.

“한쪽은 난시와 원시, 다른 한쪽은 난시와 근시입니다.

한마디로 노안이 왔습니다. 이젠 돋보기 쓰셔야 합니다.”

-예? 돋보기요?

“책을 많이 보시나요?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시나요?”

-둘 다 해당됩니다.

“눈에 맞는 돋보기 맞추세요.”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 안경사가 날 위로해 준다.

“요즘은 젊은 사람도 갑자기 노안이 오더라고요.”

-저 안 젊습니다.

“안경 써도 예쁘신데요 뭘!”

-이제 그런 말 안 믿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괜스레 남편한테 신경질 부려본다.

“당신한테 노안 옮았다고!

맨날 안경 썼다 벗었다 하는 남편 때문이야.

이제 나랑 눈 맞주치지마!!”

어이없어하는 남편.

“방귀도 나한테 옮고, 발뒤꿈치 각질도 나한테 옮고

겨울철 코딱지도 옮고. 이젠 노안까지.

미안해. 마누라.”

너스레 떠는 남편.

오늘은 어떤 말도 위로가 안된다.

돋보기를 썼다.

책을 펼쳐본다.

어머, 글자가 너무 선명하고 또렷하다.

머릿속이 시원하다.


나이 듦과 노화.

받아들이기 싫어서 버티고 버텼는데.

온몸이 경고를 한다.

알았다고!

이제 너를 담담히, 그리고 기꺼이 받아들이리.

흐르는 세월 따라 출렁출렁 흘러가지 뭐.


돋보기 쓴 모습도 썩 나쁘진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못 말리는' 나의 청소 강박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