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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24. 2023

호박잎 보고 울 줄이야

형님이 해주신 강된장과 호박잎...남편 흉보며 동지애로 뭉친 동서지간

“동서, 내일 어머니 보러 올 거지?”

바로 위 작은 형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그럼요. 형님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동서가 호박잎 좋아한다고 했잖아. 좀 갖다 줄라고. 시장에 호박잎 볼 때마다 동서 생각이 나서.”

순간 울컥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하고 챙겨주는 사람, 친정 엄마 돌아가신 후 처음이다.      


초여름에 아주 짧게 등장하는 호박잎은 나의 최애 음식이다. 눈에 보일 때마다 사서 먹어도 일 년에 서너 번 밖에 못 먹는다. 시골에서는 너무 흔해 천대받던 재료가 서울에서는 아주 귀하다. 호박잎을 딸 때 아무거나 막 꺾으면 안 된다. 막 올라온 어린 순이 달린 것이 야들야들해서 먹기 좋다. 색깔도 진한 초록색보다는 약간 연한 잎을 골라야 한다. 호박잎을 씻을 때는 껍질을 벗겨야 하는데 난 줄기를 뚝 끊어 한번 쓱 벗기고 만다. 까슬까슬한 느낌을 유지한 채  찜통에 찌는 게 나의 비법이다. 찜통에서 너무 오래 찌면 물이 많이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살짝만 익혀야 특유의 서걱한 느낌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호박잎과 최고의 궁합은 강된장이다. 멸치 육수에 된장을 넉넉히 풀고 청양고추와 호박 무 감자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넣어 빡빡하게 끓인다. 호박잎에 뜨끈한 밥, 그리고 살짝 얹은 짭짤한 강된장의 조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입맛 없는 여름의  밥도둑이다.       


“너무 오래 쪘는지 깻잎처럼 납작해. 맛있게 먹어.” 작은 형님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종이가방을 내미셨다. 생호박잎을 기대했는데 찜기에 손수 찌셨다. 거기다가 전복, 소라까지 넣어 만들었다는 강된장까지 주셨다. 우리 형님이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신다.

동서지간이라는 관계를 생각해 봤다. 오묘한 사이다. 전혀 상관없던 남들이 같은 형제들과 결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인연이 되었다. 같은 시부모님 아래서 경쟁심도 있었지만 동지애도 생겼다.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른 남편 흉을 맞장구 쳐가며 보던 특별한 관계다. 우린 어쩌면 긴 세월 전투를 함께 치른 전우와 같을지 모르겠다. 머리 희끗해진 형님이 돋보기를 쓰고 호박껍질을 벗겼을 생각 하니 또 울컥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 주는 사람, 나를 생각하면서 손수 먹거리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하다, 형님이 주신 호박잎을 받아 들고 오는 길 진짜 부자가 된 듯하다. 오늘 저녁은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방은 '돋보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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