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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11. 2023

'못 말리는' 나의 청소 강박증

수십 년 이어온 나의 주말 루틴... 하루라도 늦어지면 좌불안석

뭔가에 집착이라는 걸 해 본적이 잘 없다. 얽매이는 순간 스스로 힘듦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집청소다. 여기서 청소를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매일 쓸고 닦아 먼지 한 톨 없는 반질반질한 그런 것이 아니다. 일주일의 딱 하루, 토요일의 루틴으로서의 정리정돈 청소다.


육아에 허덕이던 시절 우리 집은 폭탄 맞은 것 같았다. 발로 툭툭 밀고 다니며 견디다 금요일 저녁부터는 슬슬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책, 널브러져 있는 잡동사니,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구석에 처박힌 양말까지.

한껏 풀어지고 싶은 토요일 오전에는 어김없이 외쳤다.  

“자, 청소하자!”

어린 두 딸은 슬금슬금 침대 위로 올라갔고 남편은 신문을 챙겨 화장실로 도망갔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질을 하고 정리정돈을 하는 데만 꼬박 한 나절이 걸렸다. 빨래에 반찬 몇 가지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났다.

토요일에 일정이라도 생길라치면 안절부절못했다. ‘청소해야 하는데...’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찜찜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일요일로 미룰지언정 그 루틴을 한 번도 빼먹은 적은 없다. 긴 여행을 떠날 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말끔히 정돈을 한 후에야 집을 나섰다. 바빠 죽겠는데 청소하느라 꾸물거리는 마누라가 남편은 이해가 안 된다고 투덜거렸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을 뿐인데 어떻게 그를 이해시킬 수 있겠나.      


어릴 적 두 살 터울의 언니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오빠들은 일찍부터 객지에서 공부를 했고 엄마 아빠는 늘 늦게 귀가했다. 사방팔방 뛰어놀다 어둑어둑 해가 질쯤이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언니는 부엌일을, 나는 청소를 했다. 방과 마루를 쓸고 걸레질까지 말끔히 한 후 마당까지 빗질을 하면 사방엔 땅거미가 내렸다.

“아이고, 우리 딸내미들이 엄마아빠 기분 좋으라고 청소를 다 해놨구나.”

고단했던 부모님의 웃음이 좋아서 반복된 일상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으로 자취생활을 한 이후엔 주말 청소 습관으로 바뀌었다. 토요일 고향집을 다녀올 때면 보따리마다 싸주신 반찬들을 풀어 정리하고 교복도 실내화도 빨아 월요일을 준비했다. 서울로 대학을 온 이후에도 주말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은 변함이 없었다. 먼지를 떨고 제자리를 찾아간 물건들을 보며 나와 주위를 정돈했다.  그러다 보면 평정심이 생기고 다시 뭔가를 해 볼 의욕이 불끈 솟았다.

직장을 다니던 어느 날엔 엄마가 예고도 없이 서울 방문을 한 적이 있다. 어질러진 방을 보고는  ‘우리 딸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했으면 이 지경이냐’는 말을 몇 번이나 하셨다. 그 말이 큰 꾸중으로 다가와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했다. 미리 연락하고 상경하라고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주말 서울 간다. " 전화를 받으면 일주일 전부터 집은 홀라당 뒤집혔다. 냉장고 안 썩어 나는 음식들이 버려지고 옷장 안 옷들도 말끔히 정리가 됐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제거하고 예쁜 화분도 사다 놓곤 했다. 아마도 엄마는 자식의 객지생활에 대한 불안감과 걱정을 늘 집청소 상태를 보며 털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결혼 후엔 남편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바빴다. 어질러진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공부 스트레스로 어깨 축 처진 사춘기 딸들을 위로한답시고 책상과 방 청소를 했다. 순전히 나 좋아서 한 일이다.      

아이들이 크고 남편이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청소 분담이 됐다. 큰딸은 청소기, 작은딸은 물걸레질, 남편은 화장실을 담당했다. “엄마는 주말만 되면 아이돌급 스케줄이야. 얼굴을 볼 수가 없네.” 딸들의 볼멘소리. 그렇다. 드디어 나는 주말 집착, 아니 청소 강박에서 해방된 것이다.     


하지만 귀가할 쯤이면 예민해진다. ‘청소가 안돼 있음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쩌다 나갈 때와 같은 상태인 집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지나 보다. 표정 변화 하나만으로도 온 집안 식구들은 안절부절못한다.

“여보, 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일찍 온 거야. 앞으론 예령을 때려.”

옳거니!

토요일, 우리 집 단체 카톡방엔 출타 중 엄마의 귀가 예고 메시지는 필수다.

“한 시간 후 집 도착!^^”

안 봐도 눈에 선한 집안 풍경.

“엄마, 한 시간 뒤에 온대. 청소 시작!”

부녀 셋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분주할 것이다.     


먼 훗날,

내가 없는 그런 날에도

딸들이 이랬음 좋겠다.

바쁘고 버거운 시간을 보내다가도

주말 한나절쯤은

뿌리내린 자리로 돌아와

이런저런 찌꺼기는 툭 털고

쾌쾌히 쌓인 먼지 쓸고 닦으며

스스로 정돈할 수있기를

그 고요하고 단단해진 마음으로

새날들을 당당히 열어가길

누군가가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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