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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10. 2023

"장사는커녕 강된장 100인분  고스란히 버렸어."

학교 앞서 청년키움식당 프로젝트 중인 딸의 쌈밥 눈물

아침 일찍 나갔던 딸이 저녁 7시가 다 돼서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큰 대자로 뻗는 큰딸.

“으아~죽을 것 같아.”

“고생했어.”

“엄마, 나 오늘 한 끼 밖에 못 먹었어.”

“왜? 그렇게 손님이 많았어?”

그런데 큰딸이 눈물을 글썽인다.

“힘들어. 이따가 얘기할게.”

한참을 거실에 누워서 숨을 고르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저녁 밥상 앞에 앉은 딸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 장사 하나도 못 했어. 100인분 강된장 다 버렸어.”

“어쩌다?”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는 큰딸은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한 달짜리 프로젝트 청년 키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올 초 공모당선 후 시장조사, 메뉴 선정, 조리법 연구 등 몇 달을 준비하더니 6월 1일부터 본격 장사에 들어갔다. 강된장 쌈밥 메뉴. 세련된 여대생에게 그런 시골스러운 메뉴가 통하겠냐 싶었는데 첫날부터 대박이 났다. 응원차 나섰던 우리 부부도 ‘매진 됐으니 오지 말라’는 다급한 딸의 전화에 발걸음을 돌렸다. 둘째 날부터는 ‘재료 소진 영업 끝’ 안내문까지 붙여 헛걸음 손님들까지 생겼다. 영업 시작 30분 전부터 줄 서는 사람까지 등장해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단다. 다이어트와 집밥에 관심 많은 여대생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된 것 같았다. 30인분으로 시작한 점심 장사를 며칠 만에 두 배 수량으로 늘리고 일주일도 안 돼 100인분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다. 수업 없는 시간을 파트타임처럼 나눠서 일을 하는데 큰딸의 당번 일이 오늘이었다. 친구 두 명과 100인분 수량을 맞추러 아침 일찍부터 재료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었단다.


“100인분 강된장을 오늘 처음 끓였거든. 국통이 너무 깊었나 봐. 강된장 담당 친구가 너무 바빠서 아래가 타는 줄도 몰랐던 거야.”

어디서 타는 냄새가 나는데 설마 된장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단다. 몇 명에게 팔다가 뭔가 이상해서 먹어보니 도저히 팔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즉각 사정 설명 후 사과하고 환불해 주고 오늘 장사를 접었다고 했다. 세 명이 멍하니 30분은 넋이 나가서 앉아 있었단다. 내일 재료 준비를 마치고 이제야 집에  왔다고. 강된장 한 솥을 몽땅 버리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했다. 손수 싼 수백 개의 케일 쌈밥은 도저히 버릴 수가 없어서 나누어 집에 가져왔다며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팔지도 못하고 가져온 주먹밥과 케일 쌈밥. 일일이 손으로 싼 딸의 고생이 생각나 목구멍에서 막힌다.


밥상 앞에서 울먹거리며 이야기하는 딸을 보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강된장은 된장국과 달라서 점성이 높아. 자꾸 저어줘야 해. 안 그러면 아래가 눌거든. 그것까지 너희들이 알 리가 없지.”

딸의 눈물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던 남편이 쉰 소리를 한다.

“힘센 아빠가 가서 길쭉한 국자로 100인분 팍팍 저어줄까?”

울던 딸이 웃음을 터트린다.

“됐거든! 내가 어린애야? 100인분은 애초 무리였어.”

“아빠 눈엔 아직 애 같은데.”

딸이 눈을 흘긴다.

“욕심이 컸어. 70인분으로 최종 타협했어. 인건비는커녕 손해나 안 보면 다행이야.”

“값진 경험을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엄마 밥상이 뚝딱 차려지는 건 줄 알았는데. 밥 고마워요.”

울던 딸이 어느새 헤헤 거리며 경어까지 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지만 딸의 좌절을 지켜보는 건 힘이 든다. 하지만 이런저런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은 대견하다. 세상 공부 중인 딸이 나날이 여물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실패와 성공의 백신을 맞고 건강한 사회인으로 첫발을 당당히 디뎠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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