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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n 04. 2023

라면밖에 못 끓이던 남편의 환골탈태

부엌 접수한 50대 남자 사고일지... 두 딸 응원받으며 나날이 성장

“부엌일 가르쳐주라.”

할 줄 아는 음식이라곤 라면과 계란프라이밖에 없던 남편이 두 달 전쯤 폭탄선언을 했다.

퇴직 후에 요리학원 다니며 정식으로 배우겠다더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단다.

“왜?”

“그냥! 이젠 때가 됐다 싶네.”     


시키지 않아도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주방보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저기 양파랑 파 좀 다듬어 주라.”

“여보, 반찬 꺼내서 그릇에 담아줘.”

“김밥 요렇게 말면 돼. 할 수 있겠어?”

시키는 대로 꽤 잘한다.

눈썰미도 좋다.     


한 달 전쯤부턴 요리도 해보겠단다.

그런데 설렁설렁 나랑은 다르다.

상당히 계획적이고 꼼꼼하고 치밀하다.

“소금 얼마나 넣어?”

“대충 한 숟가락.”

“밥숟가락? 찻숟가락?”

숟가락!”

“저번엔 숟가락 썼잖아. 정확하게 알려줘.”

된장찌개 미역국 김치찌개를 배우더니

최근엔 조리법만 보내주면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고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터졌다.     

큰일 났어.”

“왜?”

“내솥 없이 그냥 밥솥에 씻은 쌀 넣고 물 부었어.”

“헐 ”

“지금 뒤집어서 쌀 하나씩 빼내고 있는데 물기가 걱정이네. 고장 났겠지?”     

밥솥을 뒤집어 쌀을 빼내는 남편.

“앗!”

“무슨 일이야?”

“양파 써는데 미끄러져서 손 베었어.”     

"밥을 안 넣고 김밥을 쌌어."  자기도 황당하단다.

“시금치 무쳤는데 모래가 씹혀!”

“데치고 나서 찬물에 씻었어?”

“아니. 건져서 물기 짜고 바로 무쳤는데.”

“시금치는 씻어야 해.”

“왜? 콩나물은 건져서 바로 무쳤잖아.”

“콩나물은 씻은 후에 데쳤으니까.”

“아~ 시금치는 안 씻었구나.”     


그래도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이다.     

손가락 크기만 한 남편의 무생채. 그래도 맛나다.

“아빠, 설거지하는 뒷모습 멋져요!”

“엄마가 싼 김밥보다 더 단단하고 예뻐.”

“이제 좀 일관된 음식 맛이 나오네.”

“아빠가 주부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될 분으로 등극하셨습니다.”

두 딸의 칭찬 세례에 신이 난 남편.     

손힘이 좋아 김밥도 잘 만다. 재료 아까워 다 때려넣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딱 정량만 넣는다.

“일요일 아침 밥상 감동이네. 감동.”

“남편 잘 만나 내 복이 터졌네. 터졌어.”

“이젠 밖에 있어도 끼니 걱정 하나도 안 돼.”

마누라의 감언이설에 연일 싱글벙글한다.     


“딸들아, 유리컵 좀 쓰지 마. 설거지할 때 손이 안 들어가.”

“밥 차려 놓으면 바로 좀 와서 앉아. 다 식잖아.”

“약속 있으면 바로 말해줘야지. 밥 한 솥 해놨는데.”     


잔소리 한 번 안 하던 남편.

많이 변했다.

그래도 아주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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