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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pr 05. 2024

피자 한 판 쏜다

등굣길에 작년 1학년 제자를 만났다.

와락 안긴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선생님도 엄청 보고 싶었어. 잘 지내고 있지? 2학년 선생님 만나고 나 잊어버렸지?”

“좋긴 한데...”

갑자기 귓속말로 속삭인다.

“사실은 조금 무서워요. 선생님은 천사 같으셨는데...”

“**야. 너한테만 알려줄게. 사실은 선생님도 올해 우리 반 아이들한테 엄청 무서워.”

“에잇, 거짓말. 선생님은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웃음이 나온다.


지지고 볶는 소중한 일상엔

그림 같은 학생과 그림 같은 교사만 있는 게 아니다.

친구와 싸우고, 울고, 삐치고, 상처 받고, 화해하고 그런다.

아이들은 그러면서 마음도 단단해진다.

친구들과 엉킬 때, 수업시간에 돌아다닐 때 목소리가 절로 낮아지고 커진다. 

**야~~~ 친구와 떨어져라.

**야, 자기 자리 앉아야지.

수시로 ‘내가 너를 지켜보고 있다’는 수신호를 한다. 

혼자인 게 익숙한 아이들이 많다.

‘함께’가 즐겁고 신나야 하는데 아직도 아기 같은 1학년은  어렵다.

꿀을 모아 겨우 얻어낸 운동장 놀이시간.

놀이 규칙을 알아가는 것도 벅찼다.

빠릿빠릿한 친구들은 한 숨을 쉬었고,

그럼 또 그게 서운해서 눈물 글썽이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신나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알-병아리-닭-공룡 게임은 옹기종기 걸음이 재밌지만 힘들었다.

욕심 많고 승부욕 강한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단계를 거치지도 않고 자꾸만 왕에 도전하겠다고 오는 바람에 ‘규칙대로 해야 재밌다’는 말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했다.

어떤 활동이든 빙글빙글 밖으로 돌며 게임에 몰입하지 못하는 아이도 보인다.

‘함께’여서 더 좋은 기분을, 게임에 오롯이 빠져 즐기는 순간을 언제쯤 맞이할까.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을 듣더니

**가 선을 번쩍 든다.

“선생님, 슬퍼요.”

“슬프지? 그런데 슬프지만 민들레가 예쁘게 피었을 때 선생님은 막 가슴이 따뜻하고 환한 뭔가 비추는 것 같았어.”

“맞아요. 감동적이에요.”

오~~~ 감동적이라는 말도 안다.

똥이라고 더럽다고 모두 피하던 강아지똥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거야.

빗물과 함께 땅속으로 스며들며 형체도 없어졌지만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결국 멋진 민들레꽃으로 피어났잖아.

“선생님, 노란 민들레 저도 알아요.”

올봄엔 민들레 볼 때 강아지 똥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도 기억하렴. 


창체 친교 놀이로 친구 이름 부르기 미션을 하고 있다.

“** 일어서,** 일어서, ** 일어서!”하면

앉아있던 친구가 하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면 실패다.

성격 급한 친구는 발음이 꼬이는 바람에 탈락,

목소리 작은 친구도 친구들이 못 들어서 안 일어서니 탈락,

긴장되는지 시작도 못하고 탈! 락!

“아이고 웃겨.”

자지러진다.

벌써 모조리 다 외운 아이도 여럿이다.

어서 친구들에게 관심 가져서 친해지거라. 


등굣길에 **와 **가 약속한 듯 벚꽃과 개나리꽃 몇 송이를 수줍게 내밀었다.

“선생님 선물이에요.”

봄날 최고의 선물이다.

나도 그럼 선물 줄게.

“피자 한 판 쏜다.”

“진짜요?”

눈이 말똥 말똥 해진다.

“피자 한판씩 다 줄 거야. 그런데 한 판 배불러서 다 못 먹어.

선생님이 네 조각으로 잘라 놨으니까 집에 가서

엄마, 아빠, 동생과 나눠 먹어야 해.

절대 혼자 다 먹으면 안 돼. 약속할 수 있지?”

“네!”

목소리 하늘을 찌른다.

“난 페페로니 피자 좋아하는데.”

맨 앞에 앉아 있는 **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알았어. 페퍼로니 준비했어.

가방에서 짠~~ 하고 꺼냈더니 난리가 났다.

“뭐예요. 이거!!!”

작은 젤리 피자 등장에 웃겨 죽겠단다.

“절대 혼자 먹으면 안 돼. 그리고 꼭 집에 가서 먹어. 선생님 이거 어젯밤에 굽느라 힘들어 죽을 뻔 봤다고.”

“아이~~ 진짜.”

작은 젤리보다 더 큰 웃음으로 주말을 맞는다.

하굣길 늘 인사성 바른 **가 깍듯하게 허리를 굽힌다.

“선생님, 그래도 피자 줘서 감사합니다.”

그. 래. 도.

맞장구 쳐줘 본다.

그. 래. 도. 행복해하는 너희들한테 내가 더 고마워.  


성인이 된 두 딸은 요런 젤리나 사탕 사 올 때마다 아직도 난리다.

이런 거 왜 우린 안 사주냐고.

어젯밤에도 우리 반 피자 통 미리 뜯어서 10개도 더 먹었다.

그리고 이거 엄마가 샀으니 자기들 거라고.

그런 두 딸들을 볼 때면 깨닫는 거 하나,

사랑은 줘도 줘도 목마른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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