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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16. 2023

나의 살던 고향이...비야 제발

집중폭우 산사태로 고향동네 처참한 피해 '우째 이런 일이'

연일 비가 내리고 있다. 비구름대가 중부 산간지방에 머물며 하루 500 밀리미터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여름 장마가 원래 이렇게 무시무시했나? 서울도 장대비가 쏟아지다 그쳤다를 반복하고 있다.


주말 느긋하게 저녁밥을 짓고 있었다. 뉴스를 보던 남편이 다급하게 외친다.

“여보, 저기 당신 고향 아냐?”

“응? 뭐?”

“지금 난리 났어. 빨리 와봐.”

설거지를 하다 말고 텔레비전 앞으로 갔다. 뉴스 속 기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산사태가 나서 떠내려온 바위와 토사가 마을 전체를 덮쳐 가옥이 매몰되고 무너진 처참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골목이 낯익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동네 앞으로 흐르는 내천, 과수원과 넓지 않은 논밭, 그리고 뾰족한 교회의 첨탑...

맞다. 내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이다. 뒤이어 화면 속 기자는 경북 내륙지방 한 작은 마을의 이름을 언급하며 피해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아니겠지 하던 실낱 같던 기대는 참담히 무너지고 나는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우리 동네 맞아... 어떡해...”

가슴이 벌렁거리고 목소리떨렸다.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떠난 고향 땅엔 아직도 일가친척이 많고 연로하신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농사를 짓고 계시다.      


큰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는 아침부터 초등학교 친구들 톡방이 난리였다고 했다. 그 일대 거의 모든 동네가 피해가 심각하단다. 다행히 당숙모 등 친척들은 무사하지만 동네 주민 두 명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 친구 **과 **네 등 여러 집이 다 쓸려가고 우리가 살던 집 골목 피해가 특히 심하다고 했다.      


어릴 적 폭우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여름 장마가 끝나면 친구들과 동네 앞 개울 위 다리로 달려갔다. 일렬로 쪼르르 서서 한참을 무섭게 흘러가는 물을 응시했다. 그러다 보면 우린 바다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큰 배를 타고 물살을 헤치며 "속도를 올려라!!" 애꾸눈 악당 후크선장 흉내를 냈다. 흙탕물이 일렁거리며 다리에 닿을랑 말랑하는 긴장감도 재미있었고 어떨 땐 윗동네 돼지가 둥둥 떠내려 오는 걸 보고 깔깔 웃었다.  그러다 나무가 뿌리째 내려오고 지붕이 통째로 쏟아질 때면 철없던 우리도 심각해져 집으로 도망쳤다. 우리가 사는 곳은 산 아래 지대가 높아서 물난리는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어른들의 수군거림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정작 물난리는 산에서부터 시작됐다. 무슨 이런 일이.     


고작 13년을 살았던 동네일 뿐인 고향땅. 이따금 꿈속에서 만나는 그곳은 여전히 가난하고 지지리 궁상스러웠다. 겨울철 바람 숭숭 들어온던 안방엔 여섯 식구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한밤중 뒷산에서 들리던 새 울음소리와 천장 위를 다다닥 달리던  쥐새끼들에 놀라 어린 나는 엄마품을 파고들었다. 엄마 아빠 사이를 늘 비집고 들어가야 잠이 들었던 막내딸을 웃으며 바라보던 젊은 당신들이 그곳엔 계셨다. 봄엔 진달래 천지인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가 불타는 듯했다. 뙈약빛 내리쬐는 여름이면 느티나무 아래에선 계집애들이 고무줄을 뛰고 심술 많은 사내 녀석들이 고무줄을 끊고는 도망갔다. 추수땐 아이들도 과수원으로 모두 동원돼 사과를 따고 복숭아를 땄다. 겨울방학이면 땔감을 구하러 뒷산을 훑었다. 바싹 마른 솔잎을 갈쿠리로 긁고 썩은 나무뿌리를 발로 휙 차서 비료 포대에 담아 집으로 왔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방바닥만은 절절 끓었다. 늦은 저녁 된장찌개와 김치뿐인 소박한 밥상을 둘러싸고 저녁밥을 먹던 그 광경은 흑백사진 속 고향의 한 귀퉁이로 남아 있다.      


고향 마을의 처참한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관련 뉴스를 찾아본다. 그러다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무너졌다. 친구들과 밤낮으로 뛰어다니던 골목도, 집 앞 실개천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바위와 토사물이 덮쳐 마을이 폭격 맞은 전쟁터 같다. 홀로 덩그러니 버티고 있는 느티나무만이 그곳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임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평생을 땅과 함께 살고 계신 고향 어르신들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란다. 하룻밤 사이에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하실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떠들던 이웃을 떠나보내고 뭐라 말도 못 하던 주민의 인터뷰가 가슴을 저민다.  이번 비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순식간에 물이 넘쳐 지하차도에서 갇히고 산사태로 매몰된 사람들, 가옥과 농경지 침수 등 피해규모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고 있다. 어째 이런 일이...     


오늘도 텔레비전 화면엔 고향땅 소식이 긴급뉴스로 전해지고 있다. 긴급 복구 차량들이 모여들고 있다. 경찰, 군인들이 매몰된 실종자를 수색하고 마을 진입로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무서운 비가 이제 그쳤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신들께 간절히 빌어본다. 부디 슬픔과 아픔은 여기에서 멈추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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