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가 해준 밥 먹고 이렇게 컸잖애. 호박죽 팥죽 수제비 콩국수 난 어무이가 준 건 다 맛있었어” 또 남편의 재롱이 시작된다.
오늘따라 명료한 어머니는 “아이가~ 뭐 그거 먹고 컸으까” 하신다. “아들 셋 중에 누가 젤 똑똑해?” 남편은 또 실없는 질문을 한다. “니가 젤 똑똑해” “진짜??”하며 좋아하는 남편. 거동이 불편하고 치매까지 와서 우리를 알아봤다 몰라봤다 하는 어머니는 헤어질 때 요양보호사에게 “우리 조카”라고 남편을 소개했다. 외롭고 힘든 어머니 앞서 등산복 차림의 아들 며느리는 괜히 죄송하고 부끄러워 오래 있질 못했다.
내게 늘 숙제와 같았던 지리산 종주를 미완성으로 마쳤다. 명절 시댁 앞마당서 늘 올려만 봤던 크고 웅장한 지리산을 코끼리 다리 눈감고 만지듯 훑고 내려왔다. 올여름 내가 만난 지리산은 두 딸을 닮은 야생화를 원 없이 보여줬다. 그리고 아직도 내게 설렘을 안겨주는 남편의 건장함도 보여줬다. 인정하기 싫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길에서 보잘것없는 나와의 대면은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입안에서 살살 녹던 초밥을 느닷없이 선물한 장터목서 만난 횟집 아저씨는 지리산에서 만난 최고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만나는 지리산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궁금하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나의 체력이 단단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2019.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