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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참꽃길을 언니와 걸었다.

서울-대구 떨어져 사는 친자매 티격태격 회포 풀던 날

by 포롱

“언니야, 내 4월 셋째 주에 대구 비슬산 간대이~”

“진짜? 맞다, 그때 오면 참꽃 지천으로 필끼다.”

“동네 산악회에서 단체로 가는데 언니 니도 같이 합류할래?”

“거기 내가 끼여도 되나?”

“그럼!”


“언니야, 금요일 수업 끝나고 바로 KTX 탈끼다. 언니 니랑 하룻밤 같이 잘라고.”

“등산팀하고 같이 안 움직이고?”

“응. 조카들하고 저녁도 같이 먹고 그랄라고.”

“나야 좋지. 서울 산악회 도착하면 시간 맞춰 올라가자.”


“언니야, 우리끼리 산행하자.

하산 지점서 등산팀 버스 타고 상경하면 돼.”

산악회 비슬산 산행이 순식간에 자매 산행으로 바뀌었다.


나에겐 두 살 터울의 친언니가 있다.

서울 사는 나는 대구 사는 그녀를 자주 못만난다.

부모님 기일과 방학 때 어쩌다 한 번 보는 게 전부.

엄마마저 떠나신 후 언니는 내게 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어떨 땐 친구 같고 어떨 땐 엄마 같다.

언니와 통화라도 할 땐 고향 사투리가 절로 나오고

사정없이 무장 해제돼 여덟 살이 됐다 열일곱이 됐다를 반복한다.


“이모, 용돈! 용돈!”

고등학생이 된 조카는 대뜸 만나자마자 손부터 내밀었다.

산 만한 덩치에 변성기 절정인 녀석이 능글맞기 그지없다.

“뭐야,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학교생활 힘드나?”

“이모, 용돈! 용돈!”

100킬로에 육박했던 몸무게를 10킬로 가까이 뺐다고 자랑하던 녀석이

뭐 먹고 싶냐는 말에

돼지고기 삼겹살을 위풍당당 외친다.

“너 다이어트 중이라며?”

“에이, 고기는 단백질!! 괜찮아.”

삼겹살 6인분을 게 눈 감추듯 먹는 조카

볶음밥까지 싹싹 긁어 먹어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언니는 요즘 외롭고 우울하다고 했다.

대학생 딸은 학교 근처로 독립해서 나가고

사춘기 아들은 늘 방문을 닫아걸고 산단다.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형부는 남과 다름없고

아이들도 다 커서 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아

공허함으로 당황스럽다고 했다.

회사일, 집안일,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늘 정신없이 살았는데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어쩔 줄 모르겠다고.

“너무도 간절했던 시간과 공간이

준비할 틈도 없이 들이닥쳤어.

마음이 허허롭고 이상해.”

그도 그럴 만하다.

언니는 가족에게 헌신적인 사람이다.

가정에 도통 관심 없는 형부 몫까지 해내며

두 아이 키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던 열혈 엄마.

그런 아이들이 자기 세계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하니

그 마음 오죽 하겠나 싶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동생이랑 최근 어색해졌어.

자존심에 상처를 좀 입었거든.

남들은 날더러 친절하고 배려하는 둘도 없는 좋은 성격이라지만

니는 알제? 내가 쫌 못된 구석이 있잖아.

한 번 틀어지면 뒤도 안 돌아보는 매정한 구석 말야.”

웃음이 났다.

그 매정함, 난 안다.


어릴 때부터 난 소문난 언니 바라기였다.

쫄쫄쫄 늘 언니를 따라다녀서 언니는 날 ‘똥개’라고 불렀다.

언니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후엔 망부석처럼 언니 하교만 기다렸다.

자타공인 ‘언니 껌딱지’는 언니 친구들도 내 친군 줄 알고 이름을 막 불렀다.

얼마나 성가시고 귀찮았을까.

사춘기 때는 많이 싸웠다.

말재간이 있었던 나는 언니를 말로 약올리고

언니는 힘센 주먹으로 동생을 응징했다.

우리의 싸움은 늘 부부싸움으로 확전됐다.

주먹 쓴 언니는 엄마에게 혼이 났고 약 올린 나는 아빠에게 혼이 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언니는 대구의 산업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대학생 오빠가 둘이나 있었고 밑에는 공부 잘하는 동생까지 있었으니

고단했던 부모님의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언니는 두고두고 엄마를 원망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술이 취하면 늘 언니가 불쌍하다며 우셨다.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던 난 언니만 보면 미안했다.

대구로 떠난 언니는 딴 세상 사람 같았다.

더이상 가족이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명절 연휴에도 하룻밤 자고 후다닥 떠났다.

언니가 탄 버스가 매정하게 떠날 때면 슬퍼서 엉엉 울었다.

“그 땐 다 싫었어. 가족이 그냥 지긋지긋했거든.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었어.”

그 시절 언니도 외롭고 힘들었다는 고백을 몇 년 전 들었다.


“언니야, 나도 그래.

세상 둘도 없는 좋은 사람 같지만

한번 마음 접으면 무섭게 변하거든.

근데 우리 엄마도 그랬잖아.”

같은 부모 아래서 자라서인가.

언니가 고민하고 힘들어 하는 지점이 귀신처럼 공감된다.

쌓여있던 이야기가 밤늦도록 펼쳐져 풀어졌다.

“우리 현미, 힘들어서 우짜노.”

“어이구 내 동생, 진짜 대견하대이.”

언니의 위로와 칭찬으로 편안한 밤,

포근한 언니의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겨울철 땔감 주우러 이산 저산 쏘다니던 자매가

오늘은 꽃구경을 하러 산을 오른다.

초반부터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다리가 무겁고 힘들다.

쉬운 산행이란 없는지 늘 처음처럼 고되다.

그래서 산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진다.

앞서서 씩씩하게 잘 걷는 언니.

지치 기색이 전혀 없다.

보폭도 비슷한데 왜 자꾸만 뒤처지는지 모르겠다.

이상화도 울고 갈 나의 허벅지가 언니 옆에서는 우습다.

“언니 뭔데? 왜 나보다 잘 걷는데?”

“니보다는 낫지. 힘도 내가 더 셌잖아.”

두 시간을 걸어 오르고 올라 드디어 도착한 참꽃 군락지.

핑크빛 지천을 기대했는데 영 별로다.

냉해가 심해서인지 꽃이 피지도 못하고 시들시들했다.

“그래도 붉은빛 돌고 나름 멋지다.”

이따금 만개한 꽃 무더기가 보인다.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추억을 남겼다.

따뜻한 봄 햇살 아래 점심상을 펼쳤다.

냠냠 쩝쩝 김밥에 후루룩 컵라면, 늘 같은 메뉴지만 어찌 이리 꿀맛인지 모를 일이다.

시원한 방울토마토에 달콤한 포도 과일,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

불타는 참꽃 비경은 내년으로 미룬 채 비슬산 정상 천왕봉으로 향했다.


정상행 능선길엔 사람들이 붐볐다.

앞서 걷던 젊은 여인 둘이 웃음보가 터진다.

‘포복절도’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언니야, 그거 기억 나나?”

“??”

“우리 둘이 아빠한테 혼나고 손 들고 벌서고 있었을 때

갑자기 웃음보가 터진 거야.

훈계하던 아빠가 화가 나서 빗자루를 찾고.

둘이 무서워서 냅다 도망쳤잖아.”

“아, 기억난다. 신발도 못신고 맨발로 도망갔잖아.

도망가면서도 막 웃었잖아.”

또 웃음보 터진 우리.

“아빠가 얼마나 열받았으면 빗자루를 들었겠노.

맞아도 쌌지 쌌어.”

언니는 훤칠한 키에 남자답게 생긴 아빠가 인물이 좋았다는

되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며 또 아빠 편을 들었다.

난 똑똑한 엄마가 아빠한테는 좀 아까웠다는 말로 응수했다.

아빠를 좋아했던 언니와 엄마를 좋아했던 나.

산길을 걸으며 또 티격태격.


천왕봉 정상의 참꽃은 절정이었다.

상춘객들도 붐벼서 정상석 인증 줄이 꽤 길었다.

기다리기도 힘든데 우리 앞 산악회 회원들은 전세라도 낸 듯 굴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일행으로 보이는 내 앞 여자가 대뜸 뒤돌아서며

단체 사진을 찍어 달랜다.

휴대폰을 받아 들고는 뒤돌아 언니한테 속삭였다.

“밉다 밉다고 하니까 사진까지 찍어달래. 다리만 쫙 찍어줄 거야.”

언니도 웃고 뒷사람들도 웃는다.

자매의 정상석 인증사진.

“어이! 힘센 언니, 겁은 좀 많으셔!”

바위에 들러붙은 엉거주춤 언니를 놀렸다.


룰루랄라 자매의 등산이 5시간이나 흘렀다.

산악회 등산 버스 시간을 맞추려 짧은 하산길을 택했다.

1시간 30분 정도만 내려가면 된다.

깎아지를 듯한 경사에 돌멩이도 많아 위험한 구간.

한눈팔면 다칠라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얼추 시간 맞겠다.”

“응.”

자매의 긴 침묵.

발밑만 내려다보며 걸음 걸음 옮긴다.

“다음엔 오빠들하고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

“응.”

저 아래 하산길 종착지 절이 보였다.

그런데 아침엔 못 봤던 꽃들이 절 뒷마당 쪽에 가득하다.

“예쁜 꽃이 여기에 다 숨어 있었네.”

“그러게. 소중한 것은 우리 집 앞마당에 있다더니.”


동네 산악회 버스는 벌써 승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둘 나타나는 산악회 회원들.

곧 버스 떠나겠지?

“언니야, 내가 먼저 간대이.”

“응. 조심해서 가.”

우리 언니,

떠나는 동생 보며 손 흔들어 주겠지?

어쩌면 그 옛날 나처럼 훌쩍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뭔 일인가.

사람들 우르르 다 내린다.

막걸리와 파전 먹고 서울 가잔다.

아놔~~

오늘도 언니가 먼저 쌩~ 떠났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나는 또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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