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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엔? 계곡 트레킹!

친구들과 동네산악회 따라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 소풍

by 포롱

푹푹 찌는 여름철엔 보통 새벽 산행을 한다.

오전 6시부터 시작하면 실컷 걸어도 오전 11시면 하산 완료.

하지만 올여름 폭염은 새벽에도 기온이 떨어지질 않는다.

지난주 검단산을 오를 땐 땀이 비 오듯 해서 어질어질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

실컷 걸으면서도 시원한 거 없을까?

오! 그래, 계곡 트레킹!


“오늘은 새댁 친구들 총출동이네!”

동네산악회에서 나는 ‘새댁’으로 통한다.

10여 년 전 30대 젊은 부부가 왔다며 회장님께서 지어준 닉네임이다.

동갑내기 친구들 10명이 점령한 산악회 버스엔 오랜만에 빈자리가 없다.


새벽 6시 출발한 28인승 버스가

오전 10시가 돼서야 강원도 인제 방태산 자락에 도착했다.

방동교 아래서 무더위와 정면 충돌할 준비를 단단히 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방수를 위해 만반의 채비를 했다.

이중 지퍼락에 소지품을 넣고 김장용 비닐에 먹을 걸 담아 가방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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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 방동 약수터에서 톡 쏘는 약수 한 잔,

캬~ 천연 탄산수 맛이다.

아침가리 계곡으로 트레킹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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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초입까지는 한 시간을 걸어야 한다.

첩첩산중 험난한 길이 최근 백두대간 트레일 6구간으로 개발되면서 차로가 만들어졌다.

구불구불 산길과 임도길을 걷는데 만만치 않다.

택시로 편하게 이동하는 산객들이 부럽다.

“트레킹인데 택시는 아니지!”

큰소리쳤지만 땡볕 아래 죽을 맛이다.

차가 지날 때마다 빈자리 혹시 없나 기웃거렸다.


계곡 시작점에서 점심상을 펼쳤다.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함이다.

싸 온 도시락을 하나씩 펼치니 잔칫상이 부럽지 않다.

직접 쑨 도토리묵, 새우튀김, 찐 감자, 옥수수, 순대, 두부김치, 크래미전에

갖가지 과일이 쏟아졌다.

“감자에 당원이 더 들어갔어야지!”

“단무지 무침은 왜 안 가져왔냐!”

잘 먹겠다는 말 대신 구박과 타박이 난무한다.

까르르 웃음이 양념으로 더해지니 더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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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부르고 이제 계곡 건넙시다!”

등산화 신고 가방 멘 채 첨벙첨벙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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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의 땀과 열기가 한순간에 가신다.

허리춤보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머리까지 집어넣어 본다.

가방 속 비닐봉지 탓인지 둥둥 뜬다.

물에 빠질 염려는 없겠다.


저기 쭈뼛거리는 친구 몇 있다.

그건 또 못 보지.

물장구 세례로 흠뻑 적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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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따라 걷는 기분을 어찌 표현하면 좋을까.

깊고 맑은 은둔의 골짜기를 발로 꾹꾹 누르며 감탄사 연발.

뜨거운 햇빛도 따사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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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넘어질까 한발 한발 내디뎌야 한다.

그래서 계곡 트레킹엔 스틱이 필수다.

돌을 밟을 때 몸의 중심을 잡아주고 물의 깊이도 가늠해 주기 때문이다.

올 여름 폭우 덕분인지 수량도 풍부하다.

옥빛 물 속으로 열목어, 금강모치, 모래무지, 꺽지가 도망치고 있다.

그들의 고요한 보금자리를 무단 침입한 미안함에

목소리도 줄이고

스틱도 살며시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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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햇빛도 두렵지 않다.

이렇게 즐거운데

기미가 대수냐.

태양의 선물쯤으로 생각하련다.


“주인공은 너야 너!”

돌아가며 흠뻑 물세례도 퍼부어본다.

숨어있던 개구쟁이 본능 대방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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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사이 험한 협곡 물살이 빠른 곳에선 미끄럼틀을 탄다.

폭포수 아래로 훌러덩 빠져 모자는 벗겨지고

콧물 눈물까지 쏙 빠지고

선글라스까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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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서 훌쩍 다이빙까지 도전한다.

아이고 엉덩이야!

마음만은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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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들면 다시 물로 풍덩!

냅다 드러눕고는 외친다.

"사진 찍어줘!"

친구들과 깔깔 호호

하늘과 구름까지 예뻐서 완벽한 여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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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따라 두 시간을 놀았을까.

잠시 숨 고르며 계곡 옆길 산길로 빠졌다.

조경동의 한 가운데를 지나는 '아침가리(조경동)'계곡은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세 져버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어둑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무더위도 한풀 꺾이는지 이젠 물속으로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협곡을 따라 열세번이나 굽이친다는 물을 보면서 푹신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12킬로의 대장정이 마지막이 보인다.

아쉽지만 이 물만 건너면 진동리 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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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옷과 신발은 다시 김장비닐속으로,

여벌의 옷으로 갈아입자 개운하다.

친구들과 하루 잘 놀았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물길 걷고 물놀이 하느라 노곤해졌다.

귀경길 버스 안에서 곯아떨어진 일행들.


다음날 친구들 카톡창에 이런 메시지 떴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어제 누가 물장구치면서 나 때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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