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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ul 28. 2023

인턴 좀 뽑아주시라고요!

예비 졸업생 큰딸의 도전기

“돈 좀 벌어보겠다는데 뭐가 이리 힘들어?”

인턴 서류전형에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 큰딸은 요즘 예민했다. 나름 충실하게 보낸 대학생활과 이런저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취업 시장은 녹록지 않다. 딸은 며칠 전 한 외국계게임회사에 면접 갔다가 영혼이 탈탈 털리고 왔다. 순조롭던 면접이 게임 관련 지식을 전문적으로 물어보자 꼬이기 시작했단다. 평소 게임이라고는 관심 없던 딸은 면접자 얼굴이 실시간으로 굳어져 가는 모습을 보는데 식은땀까지 났다고 했다. 한숨까지 푹 쉬면서 그런다. “조급하다고 여기저기 막 지원하면 안 되겠어.”      


“엄마, 이번 회사는 딱 내 스타일이야!”

서류전형 합격 소식을 전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딸이 오랜만에 웃었다.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여성용품 전문 회사였다. 언젠가 언론에서 젊고 유망한 CEO로 소개됐던 앳된 소녀의 얼굴을 한 대표가 기억난다. '깔창 생리대' 사건을 접하고 충격받아 생리대 기부를 하고 싶던 대학생이 직접 여성용품 스타트업 회사를 차렸던 사연이 꽤 인상적이었다. 딸은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그리고 사전 과제에 정성을 들였다. “엄마, 한 번 볼래?”라며 보여주는데 한 줄 한 줄이지만 그간의 수고와 고생이 읽혀 마음이 뭉클했다. 여성의 건강한 삶에 대한 고민과 도전이라는 문구가 좋았다.


“엄마 아빠 앞에서 모의 면접 한번 해보자.”

실무진 인터뷰를 하루 앞두고 딸이 부부 앞에 앉았다. 딸이 제출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사전과제를 훑어보고 회사 사이트, 대표 관련 인터뷰 자료를 보며 질문 리스트를 만들었다. 남편은 옆에서 뭐 그런 걸 하냐는 표정이다. 주전공보다 복수전공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첫 질문으로 물었다. 딸아이는 그 질문은 벌써 여러 번 받았다는 듯 제법 조리 있게 말을 한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대뜸 끼어든다. “현아, 너 지금 시선처리에 문제 있어. 여기저기 쳐다보면 뭔가 불안한 사람 같거든. 상대방 인중을 쳐다보며 얘기해.” 자기 시선처리가 그렇게 불안해 보이냐며 울상 짓는 딸. 두 번째 질문은 영국 교환학생 갔을 때 인상 깊었던 마케팅 수업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당황하던 딸은 이내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풀어간다. 그때 또 남편이 불쑥 끼어든다. “현아, 말끝을 얼버무리면 안 돼. 뭔가 자신 없는 사람처럼 보이거든.” 아빠의 지적이 아팠던 걸까. 딸이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군다. “나 안 해.” 엄마아빠 앞에서 서러움과 속상함이 폭발한 딸. 남편 허벅지를 찔렀다. “아니, 다 끝난 다음에 할 것이지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어 애를 울려?”  “미안해. 딸. 난 잊어버릴까 봐. 알았어. 이제 입 다물고 있을게.” 어르고 달래서 다시 시작한 모의 면접은 밤 11시가 돼서야 끝났다. 엄마아빠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변을 보충하느라 딸은 새벽까지 잠을 못 잤을 것이다.      


“대박!! 엄마가 했던 질문이 거의 다 나왔어.”

실무진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전화를 건 딸. 흥분한 딸은 엄마아빠랑 모의면접 보기를 잘했다며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분들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최근 마케팅을 잘하고 있는 업체 예를 들어보라는 질문을 들을 땐 엄마의 족집게 실력에 감탄했단다. 딸아, 누구라도 그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거란다. 엄마 아빠가 너의 곱절의 시간을 산 인생 선배라는 걸 잊지 말거라.     


취업을 준비하는 스무셋의 딸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그중에 몇 가지를 꼽자면 똑똑한 척 완벽한 척하는 젊은이들이 꽤나 허술한 구석이 많다는 것, 쓸데없는 겸손으로 자신의 PR에 인색하다는 것, 업무능력 치중하다 기본적인 인성과 자질을 간과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일은 가르치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기본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그들이 삶의 총합이기에 가르침의 영역을 벗어난다.  가정과 학교, 그들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그 사람 자체이기 때문에 단시간의 훈련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을 짧은 시간에 면접자들에게 어필을 할 수 있냐가 관건이라 믿는다. 딸에게 부디 좋은 결과가 전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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