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의 죽음 이후 7월 21일부터 시작된 일곱 번의 교사 집회가 지난 토요일 끝났다. 동료의 죽음 진상 규명과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져 종각에서 시작한 5000명의 인원은 9월 2일엔 20만 명으로 늘었다. 검은 옷차림의 선생님 행렬은 국회 정문 앞 8개 차로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1킬로 떨어진 여의도 역까지 이어졌다.
집회장소 예정 12구역까지 가득 차 여의도 공원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
교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시작된 집회는 정치색을 배제하며 매번 새로운 집행부를 꾸렸다. 손팻말 문구부터 부르는 노래 등 모든 절차와 내용은 민주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결정했다. 집회가 끝나면 그동안의 진행 과정을 공개하며 자발적인 기부로 비용을 충당했다. 이런 방식의 기금 마련은 오픈런이라 할 만큼 인기 있어 순식간에 마감돼 참여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종로, 광화문, 여의도로 장소를 바꾸어가며 참담한 교육현장을 성토했다. 악성 학부모 민원은 넘쳐나고 아동학대범으로 고소 고발을 당하며 교실을 난장판으로 학생을 지켜만 봐야 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가르칠 수 있게 해 달라, 교사로 살 수 있게 해 달라 생존권을 처절하게 요구했다. 무엇이 모범생 그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을 방학 내내 피켓 들고 구호를 외치게 만들었을까. 젊은 교사의 억울한 죽음은 결국 그들의 죽음과 다름없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혼자 감당해 온 고통과 설움이 터져 검은 물결로 거리를 메웠다.
선생님들의 일곱 번의 토요일은 남달랐다. 1000명에 달하는 질서유지 자원봉사자들은 행여 시민들이 불편할까 집회 몇 시간 전부터 보행통로를 확보하고 구역을 나눴다.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부터 참가자들의 동선을 안내하며 안전사고를 대비했다. 건강이 나쁜 선생님들을 그늘로 모시고 온열질환자들이 생길까 수시로 얼음물을 보충해 줬다. 줄까지 맞춰 앉은 교사들은 평소 일면식도 없으면서도 간식과 얼음물도 나눴다. 시키지 않아도 깔판과 우비도 여분으로 준비해 서로를 챙겨줬다. 비가 오면 옆에서 뒤에서 우산이 씌워졌다. 사비를 털어 부채를 나누고 손수 그림을 그려 스티커를 제작 배포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집회는 시종일관 차분했고 어떤 무질서도 없었다.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모습은 역시 대한민국의 교사답다는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600대에 달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KTX를 타고 상경한 지방 선생님들. 지역을 알리는 피켓도 얼찌나 재밌는지... (출처: 교사 온라인 커뮤니티)
집회 내용도 갈수록 진화해 선생님의 목소리와 요구가 짜임새 있게 전달됐다. 때로는 절절하게 울부짖고 때로는 단호하게 외쳤다. 자발적으로 꾸려진 TF팀은 수만 명의 교사 설문조사를 근거로 300쪽에 달하는 정책요구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사 보호, 학교폭력법 개정, 통일된 민원 처리 시스템 구축, 문제행동 지침 마련 등의 4가지 주제를 최종 발표할 땐 그들의 능력과 열정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선생님들의 간절한 외침을 듣기나 했을까. 여름을 꼬박 바쳐 ‘공교육을 살리자’ 목 터져라 부르짖었음에도 학교 현장은 그대로다. 교육부가 학생생활 지도에 관한 고시안을 일부 발표한 것을 제외하곤 교권회복 4법은 여전히 입법화되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되고 아이들과 또 정신없는 학교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해맑은 아이들 속에서 웃고 떠들다 문득 우울해진다. 이유 없이 가슴이 답답하다. 텅 빈 교실을 보다 꽃도 펴보지 못하고 떨어진 젊은 동료가 생각나 눈물이 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걸까. 그토록 즐겁던 가르치는 일이 이제는 버겁고 자신 없어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집단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닐까. 공교롭게 며칠 전 6학년 담임교사 두 명이 또 목숨을 끊었다.
9월 4일 서이초 교사의 49재를 앞두고 학교 현장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하자는 교사들의 움직임에 학교는 재량휴일 찬반 학부모 설문까지 했다. 90프로에 가까운 학부모들이 찬성을 했지만 교육부의 불법 행위 엄단 공문에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당장 내일 학교는, 교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