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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Oct 03. 2023

아버님 추모 책 출간  이야기

“여보, 아버님 추모하는 책 한 권 만들자.”

아버지를 여의고 슬픔에 빠진 남편을 위로하려고 꺼낸 한마디가 큰일을 만들었다. 시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병간호하다 당신께서 먼저 떠나셨다. 늘 고향 땅을, 아니 우리 곁을 지켜줄 거라 믿었던 아버님이 예고도 없이 떠나자 식구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시아버지 장례식 후 3개월간 아버님과 이별을 우리 방식대로 참 근사하게 했다. 300여 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볼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매일 밤 편집회의를 했다. 어떤 식으로 책을 구성할까, 원고는 누구에게 몇 편을 쓰라고 할까, 역할분담은 어떻게 할 건지 등 하나에서 열까지 머리를 맞댔다. 훗날 남편은 신문사 밥을 잠시나 먹은 마누라 덕을 톡톡히 봤다고 두고두고 칭찬했다.     


남편(셋째 아들)의 진두지휘로 가족문집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책은 크게 네 분야로 구성했다. 1부 ‘고백’ 제목을 달아 직계 아들 딸의 글, 며느리 사위 손자 손녀의 글, 친인척 인터뷰로 구성했다. 처음에는 부모님 얘기로만 글감을 제한하려다가 어릴 적 자란 이야기, 가족 고향과 관련된 주제로 확장해 6남매에게는 3편씩 글을 할당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참 부담스럽고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누구 하나 군소리 없이 원고 마감을 지켰다. 순둥 순둥 늘 협조적인 가족이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을 큰일이었다.      


가족들의 글들이 한 편 두 편 도착할 때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웃고 함께 감탄하고 함께 울었다. 첫 원고는 삼촌을 따라 방송국 기자가 된 큰 조카의 글이었다. ‘할아버지와 오토바이’라는 글은 간결하지만 울림이 깊었다. 조카의 시골  기억 ‘대림 시티 100’. 허름한 오토바이를 늘 태워줬던 할아버지 이야기에 우리 부부는 감동해서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큰 아주버님(첫째 아들)은 미니 자서전이라고 할 만큼의 30페이지에 걸친 이야기를 보내주셨다. 부모님의 기대를 받으며 자란 맏이의 책임과 부담이 60년 가까운 삶 속에 가득해서 안타까웠다.      


작은 아주버님(둘째 아들)이 아버님의 고집을 이기고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대학을 간 이야기를 할 때는 웃음이 나왔다. 고등학생 큰딸 공무원 시험 보게 하겠다고 나이를 한 살 더 많게 호적을 고친 아버지께 형님(큰딸)은 ‘내 나이 돌려주라’라고 뒤늦은 투정도 하셨다. 둘째 아가씨(둘째 딸)가 왜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됐는지 고백할 땐 가슴이 뭉클했다. 막내 아가씨(셋째 딸)는 다음 생엔 더 살가운 딸이 되겠다고 부모님께 약속도 했다.      


큰형님의 글을 받았을 땐 묘한 감정이 들었다. 큰며느리가 독차지한 시부모의 사랑에 질투도 나고 그들만의 끈끈한 뭔가가 느껴져 씁쓸했다. 사위들의 부모님 이야기, 며느리들의 성장기도 참 재미있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우리가 서로를 참 모르고 있었다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조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고 큰딸의 글을 읽으면서 남편과 박장대소했다. 가부장적이고 답답한 친가가 적응이 안 됐다고 했다. 그리고 딸만 둘 낳은 엄마에게 대가 끊긴다고 아들 낳으라고 하는 할아버지가 이해가 안 됐다는 대목에선 남편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솔직한 자기 고백이 결국  상처 회복의 시작이라는 평소 지론을 설파하면서 원고에 칼을 대려는 남편을 끝까지 막았다.      


책을 만들다 보니 좋은 글에 대한 욕심이 자꾸 생겼다. 급기야 친정 큰오빠에게까지 글 한 편 써 내놓으라고 떼를 써 집어넣는 등 편집자의 권한을 남용했다. 오빠의 절절한 사모곡과 동생 가족을 향한 애정에 가슴 뭉클했다.  왜 친정엄마 돌아가시고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하는 자책도 다.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고향을 찾았다. 아버님 묘소를 가고 이모님, 고모님, 사촌 형님, 그리고 집안의 종손 어른까지 만나며 인터뷰를 했다. 장례식을 치르면서 경황이 없어 아버님의 누나인 고모님에게 부고를 알리지 않았던 남편은 호된 야단을 듣기도 했다. “세상에 동생이 죽었는데 누나한테 연락을 안 한 이 망할 놈들을 어쩔꼬!!” 아버님 묘소 앞에서 쩌렁쩌렁 소리 지르며 곡을 하던 고모님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2부 ‘우리끼리’는 수년 전부터 운영했던 가족밴드 글을 발췌해서 실었다.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고자 육 남매가 틈틈이 의사소통하던 밴드는 우리들의 일상이 가득했다. 그리고 시부모님의 투병 세월이 사진으로 눈물겹게 쌓여 있었다. 방대한 사진과 오고 갔던 많은 이야기가 2부를 장식했다.      


3부는 ‘아버지의 사진첩’으로 젊은 시절의 시부모님, 어린 시절의 6남매, 그들의 성장, 결혼과 출산을 청춘, 결실, 행복, 여운의 소제목으로 엮었다. 일일이 사진첩을 뒤지고 찍고 추리는 시간과 싸움이었다. 주름 하나 없던 젊은 남녀가 스무 명 넘는 대가족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남편은 주말마다 고향 곳곳을 다니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았다. 그러다 시조 할아버지 발자취까지 취재했다. 결국, 고려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발하여 지리산 자락 산청에 자리 잡은 농은 민안부 시조 할아버지와 그 후손 여흥 민씨 이야기를 마지막 4부 ‘뿌리’로 엮었다.     

 ‘이생이와 을동댁’

늘 추석이면 이 책을 펼친다. 어린 나이에 작은아버지 집으로 양자로 간 ‘이생’이의 고단한 삶과 열아홉에 이생이에게 시집와 평생을 ‘을동댁’으로 불린 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를 여읜 6남매의 애틋한 사부곡.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그때의 슬픔이 이제는 또 다른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버님을 기억하고 당신을 추억하던 우리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겼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우리는 추석 차례를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대신 날 좋은 10월의 어느 날, 가족끼리 출판기념회를 하던 지리산 자락으로 달려간다. 아버님과 멋진 이별을 하던 그곳으로! 책 속의 주인공들이 매년 가족 모임을 하며 ‘이생이와 을동댁’ 후속 편을 자꾸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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