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공룡능선은 산악인들의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다. 산행 경력이 꽤 쌓여야 하고 체력 또한 자신 있는 사람이 도전하는 난이도 최상의 암릉 코스다. 험준한 바위가 공룡의 등처럼 삐죽삐죽하다고 하여 공룡능선이라 불리는데 아름답고 웅장하여 우리나라 국립공원 100경 중 제1경으로 알려져 있다. 코스도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이 설악 소공원에서 시작해 비선대, 마등령, 무너미 고개, 희운각 대피소, 천불동계곡, 비선대, 소공원으로 돌아오는 원점 회귀 산행을 선호한다.
공룡능선을 처음 오른 건 한창 산행에 자신감이 붙던 마흔의 나이였다.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천불동 5시간 하산길에 넋이 나가서 다리를 질질 끌고 내려왔다. 20킬로미터가 넘는 장거리에 최소 12~15시간 이상이 걸리는 난코스를 너무 쉽게 봤다.
다시는 안 간다 다짐을 했건만 고생했던 기억을 잊고 2년 전 또 올랐다. 아마 새벽녘 위용을 드러내던 설악의 웅장함이 그리웠을 것이다. 두 번째 만난 공룡은 변덕스러움 그 자체였다. 쨍했던 날씨가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이더니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 모자가 날려가기도 했다. 하산길에는 비까지 쏟아져 쫄딱 젖었다. 발바닥은 불이 나고 고관절이 삐거덕삐거덕했다.
올 가을 난 또 왜 공룡이라는 말에 앞뒤도 안 보고 손 번쩍 들었을까. 그것도 남편 고등학교 동창들 산행인데 말이다. 참 못 말리는 중독이다.
산 아래 펜션에서 잠깐 눈을 감았다가 새벽 3시에 기상, 소공원 아래 도착하니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들이 몸집만큼 큰 배낭을 멘 산악회 회원들을 쏟아내고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남편의 친구들도 창원, 구미, 거창, 대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 11명이나 됐다.
사방은 깜깜하고 하늘엔 별이 총총 떴다. 랜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했다. 유경험자는 내가 유일하여 맨 앞에 섰다. 기대와 긴장으로 가슴까지 두근거린다. 새벽공기가 시원하다. 추운 줄 알고 바람막이, 패딩, 점퍼를 가방 가득 넣어왔는데 괜한 짐만 되겠다.
비선대까지 3.7킬로미터 평지를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여 걸었다. 가벼운 준비가 끝나고 이제 마등령까지 3.5㎞의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 코스가 오늘 산행의 최대 고비다. 앞사람 발만 쳐다보고 급경사 돌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 코스에 여기저기 헉헉대는 숨소리 들린다. 옷은 이내 흠뻑 젖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 연신 손수건으로 닦았다.
“옷 벗고 가요!”
“물 한 모금 먹고 가요”
“간식 먹고 가요.”
좁은 산행로에서 틈만 나면 비켜서 호흡을 고른다. 등산 초보가 대부분인 남편의 친구들은 이날을 위해 올여름 내내 체력훈련을 했다고 한다. 한주도 쉬지 않고 동네 뒷산을 오르고 체육관을 다녔다고 한다. 겁을 잔뜩 먹고 왔는데 막상 오르니 별거 아니라는 농담도 던지는데 웃음이 나온다. 공룡의 참모습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가파른 돌길과 계단을 두 시간여 올랐을까. 저 멀리 희뿌연 여명의 기운이 보인다. 곧 기막힌 전망이 시야에 들어오면 힘듦도 조금 덜할 것이다.
그때였다.
뒤에서 ‘윽’ 소리가 나더니 ‘퍽’ 소리가 들린다.
아저씨 한 분이 앞으로 넘어졌다.
“조심하세요. 아저씨 괜찮아요?”
그런데 반응이 없다.
일어나질 않는다.
뒤에 있던 일행이 흔들어 본다.
꼬꾸라진 채 미동이 없는 아저씨.
뒤에 오던 젊은이 한 명이 소리쳤다.
“여기요!! 의사 선생님 안 계세요?”
남편의 동기 중 간호사로 일하는 언니가 뛰어갔다.
“제가 간호 삽니다.”
환자를 비교적 평평한 땅에 눕혔다.
“여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제 목소리 들려요?”
“으~~~ 으~~~”
어깨를 두드리고 이름을 불렀지만 가는 신음만 겨우 낸다..
119에 구조요청 전화를 했다.
젊은이를 포함해 5명이 돌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성준(가명)아! 정신 차려라~성준아!”
아, 이 분 이름이 성준이구나.
동행하던 친구분이 간절하게 이름을 계속 불렀다.
친구분에게도 과호흡이 오는 것 같았다.
간호사 언니가 진정을 시켰다.
주변 사람들은 환자의 손발과 온몸을 주물렀다.
체온이 떨어질까 배낭 속 옷을 꺼내 덮어주었다.
날은 왜 이다지도 더디게 밝은가.
구조헬기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옆의 젊은이는 119 구조 요원과의 통화 영상에 맞춰
‘하나 둘 셋’을 구령을 계속해서 붙여줬고 교대로 심폐소생술이 계속됐다.
이 분 살릴 수 있을까?
주말마다 함께 등산하던 사이인 친구분 말로는 환자에게 지병은 없었다고 했다.
가족에게 연락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모든 가족은 미국에 있다고 한다.
혼자 누워있는 그가 더 외롭고 슬퍼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심폐소생술을 하던 사람들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환자의 체온이 차가워지는 게 느껴졌다.
주위에 있던 일행 모두가 동시에 어떤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설령 0.1%의 희망일지라도,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합류해서는 환자의 이름을 불러줬다.
“성준아, 성준아!!”
그 이름이 왜 그렇게 슬프게 들리는지 눈물이 왈칵했다.
날이 완전히 밝았다.
산 아래 구조팀이 진즉에 출발했고 119 소방헬기가 떴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고 발생 40~50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빨리 도착해라.
다다다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들은 일제히 플래시를 하늘로 비췄다.
헬리콥터가 사고지점을 빨리 찾게 하기 위함이었다.
빨간색 소방헬기가 나타났고 요란한 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프로펠러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옷이 날아갔다.
착륙장소가 마땅치 않아 구조팀 2명이 밧줄을 타고 내렸다.
구조 요원이 심 제세동기를 부착하고 환자를 고정한 후 헬리콥터로 이송했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구조대원의 인사 후 친구분마저 탑승하자 구조 헬리콥터는 떠났다.
사투의 현장을 정리하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등산 가방을 다시 매고 시계를 보니 1시간 20분이 흘렀다.
함께 했던 5명의 젊은이 중 한 명이 그런다.
“선생님, 우린 최선을 다한 거 맞죠?!”
“그럼요.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몰려왔다.
일행들과 합류해 아침밥을 펼쳐놓고 아래를 내려보니 설악의 절경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왼쪽 아래로 험준한 공룡의 등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그런데 오늘의 설악은 왠지 무섭고 두렵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초라하고 하찮은 존재인가.
사실 마등령까지 다시 완만한 오르막 2시간은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구조헬기를 타고 간 그분은 어찌 됐을까. 친구분은 얼마나 기가 막힐까. 급경사 길을 조금만 쉬면서 천천히 올랐다면 괜찮았을까. 평소 혈압이 있거나 부정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미국에 살고 있다는 가족에게 연락은 됐을까.
공룡의 등을 타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5시간을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나의 근육이 보내는 경고 신호도 감사히 받아들였다. 여전히 뛰고 있는 내 심장, 걷고 있는 두 다리가 대견했다. 전투식량으로 뜨끈한 점심도 먹고 사진도 찍으며 한 지점 한 지점 꼭꼭 밟았다. 힘들면 쉬고 숨차면 호흡하면서 조심조심 걸었다. 천천히 가자. 급할 거 없다.
공룡 코스가 끝나고 희운각 대피소에서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시간은 벌써 3시가 다 다 됐다. 등산 초보 일행 중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족저근막염이 도져서 절뚝거렸고 신발이 너무 꽉 맞아 발가락이 아파 겨우 걸음을 내디뎠다. 밝을 때 하산하기는 글렀다. 그래도 그게 뭐 대수인가 싶다.
평소 같으면 천불동 계곡의 멋진 조망에 감탄사가 몇 번은 터져 나왔을 터인데 오늘은 고요히 걷는다. 천당폭포 오련폭포의 물소리도 기괴한 귀면암도 오늘따라 처연하다. 비선대까지 왔더니 날이 어둑해졌다. 다시 랜턴을 켜고 거의 꼴찌로 깜깜한 소공원에 도착했다. 16시간의 대장정이 끝났다. 일행 중 한 분이 뉴스를 공유했다. 마등령 고갯길 심정지 환자 사망. 아 결국 떠나셨구나.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올가을 공룡은 참 잔인하다.
<심정지 환자를 돌봤던 일행 중 한 명의 시점에서 재구성한 일화입니다. 필자는 앞서 걷고 있어 전해 들은 이야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