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아이들과 뮤지컬 만들기

피땀눈물 학예회 공연

by 포롱
드디어 막이 올랐다.

컴컴해진 무대로 아이들이 하나둘 올라간다.

얼굴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여기는 평양 예술 초등학교…. 통일 후 10년이 지났지만…….”

종이 울리고 등장한 담임선생님.

“동무들~ 이번 수학여행 장소를 정해야 하는데 회장 동무 나와서 회의해보라우!”

저 북한 말투를 얼마나 연습했던가.

손짓까지 해가면서 하는 연기가 자연스럽다.

보는데 웃음이 나온다.

동생들과 부모님, 선생님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다.

실전에 강하다며 자기들을 믿으라며 큰소리치던 녀석들 말이 맞았다.

그랬다.

코로나로 4년 만에 재개된 학예회에 우리 반은 뮤지컬을 올렸다.

“우쿨렐레 3곡은 너무 밋밋해. 너희들 2학기에 뮤지컬도 배웠잖아. 뮤지컬과 우쿨렐레 콜라보 어때?”

“10월 연휴 빼면 3주도 남지 않았는데 가능할까요?”

“하자! 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올리는 거지 뭐!”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려라!’ 제목 아래

아이들이 쓴 ‘남북한 통일 후 이야기’를 기초로 대본 작업을 했다.

교실에서 수학여행 장소를 두고 학생들이 서로 싸우는 내용이다.

활발하고 끼 많은 우리반 남자들과 수줍음 많고 조용한 여자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래! 남자를 북한 출신으로, 여자를 남한 출신으로 정하자.

남자들 대사를 길고 세게, 여자들은 짧게 간결하게 처리하자.

나름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해 캐스팅까지 박아 넣었다.

첫 대본을 공개하자 품평이 쏟아졌다.

“선생님, 중간에 북한 출신 남자들 노래를 ‘금강산 찾아가자’로 바꿔요!”

“우쿨렐레 연주가 과격한 북한 남자들하고 안 어울려요.”

“안무 짜서 씩씩하게 춤춰보죠.”

“북한과 남한 음식들도 더 넣어요.”

“부산 돼지국밥 어때요?”

“강냉이밥도 넣죠!”

대본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원을 그리고 앉아 한번 대사를 읽어보았다.

한숨이 나온다.

“말하듯 자연스럽게 하자.”

그런데 몇몇 아이들의 목소리 톤과 연기가 좋다.

한껏 칭찬해 줬더니 서로 가르쳐 주며 연습한다.

“대사 이제 녹음할 거야.”

“무대에서 립싱크하자고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너희들이 실감 나게 벙끗벙끗하면 돼.”

몇 년 전 현장에서 생목소리로 연기했다가 망한 경험을 들려줬다.

우쿨렐레 연주는 생음악으로 연주하기로 했다.

“뻣뻣하게 그냥 서있으면 누가 대사를 하는지 모르니까 손짓·발짓을 크게 크게 하자!”

막과 막 사이가 자연스럽게 전환이 돼야 하는데 어떡하지?

“남자들만의 구호를 외치거나 대사를 바로 치고 들어가자!!”

남한 북한 출신 학생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을 슬로모션 대사와 행동으로 처리했더니

생각만큼 효과가 안 난다.

“‘12세 금지’ ‘동생들아 이렇게 싸우면 안 돼’ 피켓 보이와 피켓 걸을 등장 시키자.”

3주간 아이들과 온통 학예회 준비에 열중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궁리했다.

등교해선 아이들과 머리를 맞댔다.

조명, 음향, 안무, 소품, 제작과정 촬영 필름(메이킹 필름) 만들기, 포스터 제작 등 자기가 맡은 역할을 아이들은 충실히 따라줬다.

대본이 수차례 수정되고 연습을 할수록 연기가 자연스러워지고 능청스러워졌다.

제작과정 촬영 필름이 완성돼 학부모님과 동생들 각 반에 전송했다.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도 교내 곳곳에 붙였다.

“너희들 잘할 수 있겠지?”

“선생님, 우릴 못 믿어요?”

“아니, 믿지! 너희들 안 믿으면 누굴 믿겠니!”


우쿨렐레로 ‘제주도 푸른 밤’을 감미롭게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여자아이들.

감미롭다.

“북한에도 갈 만한 곳이 천지삐까린데 왜 굳이 남조선으로 가자는 기야?

금강산 가자 야!!”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남자아이들이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니 무대가 한껏 달아오른다.

“비릿한 제주 갈치보다는 담백한 개성 만둣국이 최고지!”

“무슨 소리야, 금강산보다 한라산이 더 좋거든?”

서로 싸우던 남녀 아이들이 한순간 멈춘다.

“우리가 어른들하고 지금 똑같아! 어른들 그런 모습 우린 배우지 말자!”

맞아 맞아! 옳소 옳소! 동감이야!

남북한 우리 땅 구석구석 꼬부랑 고갯길을 걸어가 보자고 천연덕스럽게 외친다.

오호~~

연습이 헛되지 않았구나.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우쿨렐레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뜨거운 박수에 무대를 내려오는 아이들의 얼굴에 만족감과 뿌듯함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엄지 척을 해줬다.

“우리 좀 멋있죠?”

“거 봐요. 걱정하지 말랬잖아요.”

“선생님, 이 정도면 동생들 앞에서 어깨 으쓱해도 되죠?”

교장 선생님께서 내 손까지 잡으시며 감탄하셨고 손수 아이들을 찾아오셔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쩜 그렇게 실감 나게 북한말을 하냐, 춤은 언제 연습을 했냐, 우쿨렐레 연주가 멋있다 등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다.

‘홀가분한데 뭔가 아쉬워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마음이 이상하다.’ ‘나중에 수능 시험도 마치고 나면 이런 기분일까?’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이런 무대는 불가능했을 거다. 하나에서 열까지 감사하다.’ ‘10분도 채 안 되는 무대를 준비한 우리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두 시간 공연은 어떻게 하지?’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덜덜 떨렸는데 올라가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 시간을 우린 즐겼다. 우린 은근 무대 체질임을 증명했다.’

학예회 소감문을 읽는데 아이들과 함께 흘린 피땀 눈물이 꽤 값진 교육이었음을 깨달았다.

연습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르쳐주고 싶었는데 성취감까지 덤으로 얻었다.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보석같이 빛나던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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