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명 데리고 감행한
우당탕 6학년 우중캠핑

by 포롱

서울시교육청 퇴촌야영장 1박 2일 숲체험캠프에 당첨된 건 한 달 전이다. 낙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확률 낮은 일인데 올해 우리 반은 정말 천운을 타고났다.


개학 후 노란버스법이다 뭐다 해서 인근 학교는 체험학습도 취소하는 분위기라 망설였다. 이 녀석들 어디 간다고 하면 다른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난리 날 텐데 동료들에게 민폐라도 끼칠까 그것도 걱정이 됐다. 조용히 표 나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선생님이 비밀 프로젝트를 하나 해볼까 해. 이건 가는 날까지 소문이 나면 절대 안 돼. 최대한 조용히 준비하고 다녀와야 하는데 너희들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엉덩이를 들썩이며 좋아 어쩔 줄 몰라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가 들릴 경우엔 선생님은 바로 이 프로젝트 취소할 거야!!”

협박성 발언으로 시작했지만 1박 2일 캠핑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선생님이 최고예요!’, ‘선생님 사랑해요’, ‘진짜 5반되길 잘했다!’며 자기들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얼싸안았다.

몇 주간 아이들은 눈빛으로 대화를 했다. 캠핑 낱말만 나와도 서로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행여 옆 반 아이들이 들을까 걱정돼 회의할 때는 출입문을 닫고 목소리도 낮췄다. 3명씩 잠자리 조를 짜고, 식사 모둠도 만들었다. 삼겹살, 볶음밥, 떡볶이, 된장찌개, 라면 등 세끼 메뉴가 결정되자 흥분치가 최고에 달했다. 식자재와 조리도구는 누가 가져올지, 역할분담은 어떻게 할지를 것인가를 의논하는 아이들의 얼굴엔 행복, 설렘이 가득했다.

이따금 몇 아이들이 다가와 조용한 걱정을 했다. 벌레가 많으면 어떡하냐, 진짜 야외에서 자는 거냐, 추우면 어떡하냐, 밥을 정말 우리가 해 먹냐, 침낭 없는데 이불 가져가도 되냐, 코펠 없는데 뭘 가져가면 되냐 등등…. 냄비 프라이팬 들고 와도 되니 걱정은 그만하라는 말로 안심시켰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일 불안했던 사람은 교사인 나였다. 야외활동은 늘 돌발상황과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으니 긴장과 걱정이 엄습했다. 거기다 텐트에서 잠까지 자니 말해 뭣하겠나. 이걸 왜 신청했을까, 내 발등 내가 찍었다며 후회가 됐다. 그러다가도 기대에 들뜬 아이들 얼굴을 보면 또 잘했다 싶었다. 그래, 일곱 살 여덟 살도 아니고 초등 최고학년이잖아?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다 컸잖아. 우리 아이들을 믿어보자!


출발 전날 한밤중 빗소리에 잠이 깼다. 왜 운동회, 소풍날은 꼭 비가 오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빵빵한 큰 배낭에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우산까지 받쳐 들고 등교하는 아이들. 이불 보따리에 애착인형까지 대동했다. 프라이팬, 냄비가 덜컹 거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피난 행렬같다. 가방엔 식자재와 과자 음료수 빵이 들었단다. 쌀 한 봉지, 김치 한 통, 종이 접시 담긴 캐리어도 보인다. 와~ 이 짐 좀 보소. 너희들 거기서 한 달 살기 하니?


두 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경기도 양평 퇴촌 야영장.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점심부터 해 먹었다.


깨달음 하나: 열세 살도 여덟 살과 똑같다.


“선생님 가스버너 안돼욧!”

“선생님 라면 물 얼마큼 넣어요?”

“선생님 떡볶이 어떻게 해요?”

“선생님 컵라면에 뜨거운 물 넣어야 하는데 없어요.”

“선생님 삼겹살 잘라야 하는데 가위가 없어요.”

아…. 돌아버리겠다. 가스버너 판이 뒤집혔잖아. 그 물로 라면 끓이면 한강물 된다, 냄비에 물 끓여서 컵라면에 부어야지 뭘 어떡해, 식자재 몽땅 잘라 오라 했어 안 했어? 됐고, 가위 가져온 사람?

걱정된다. 1박 2일이 진심 걱정된다.….


깨달음 둘: 교실에서 모습이 전부가 아니다.

단체활동에서 아이들은 생기가 넘쳤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숲 속에서 밧줄 타고 보물 찾기를 했을 것이다. 대체프로그램으로 진행된 까꿍 게임, 손 크기 재보기, 인간 그물로 친구 잡기, 컬링 등 모든 활동이 즐거웠다. 내외하던 남녀가 어느새 손잡는 기적이 일어났다. 엉키고 부대끼며 친구들과 더 친밀해졌다. 23명 친구가 한 명을 들어 올리는 공중 부양 활동은 반 친구들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실내 암벽등반 땐 서로를 재발견한 시간이었다. 떨어지고 실패해도 입을 앙 다물고 또 도전하는 친구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위를 잡고 옆으로 위로 한발 한발 옮겨 꼭대기 종을 딸랑딸랑 치고 내려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깨달음 셋: 감성 덩어리였어?낭만 좀 아네.


에너지 만땅 아이들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오니 물 만난 고기떼 같았다. 비를 하염없이 맞으며 ‘시원하다!’ 외쳤다. 감기 들까 걱정하는 나보고 자꾸 비 한번 맞아보라 한다. 뭔가 자유롭다나 어쩌다나. (사실 속으로 웃었다. 자식들, 뭘 좀 아네)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하지도 않던 행동들이 튀어나온다. 소녀 감성 노래를 부르며 댄스까지 춘다. 풀 냄새, 나무 냄새를 들이키고 새소리에 귀기울였다. 텐트 위로 다닥다닥 떨어지는 빗소리가 운치 있단다. 텐트 밖 계곡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느껴져 푹 잘 잤다고 했다. 학교에서 보던 친구와 선생님이 새삼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깨달음 넷: 허당기 가득한 겁쟁이들 천지다.


“개미다! 무서워~!! 누가 좀 잡아줘.”

“선생님 거미가 텐트에 있어요. 못 들어가요.”

“화장실에 나방 있어요. 무서워 죽겠어요.”

“꺅~~ 개구리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어요.”

“새끼 뱀 봤어요?끔찍해요.”

“물소리가 우릴 공격해요.”

“너무 깜깜해요. 어두워서 잠이 안 와요.”

도시 아이들은 이런 모습이구나. 사실 개미가 거미가 개구리가 더 무서워한다고, 조용한 숲 속에 떼거지 침입자들이 날뛰며 소리 질러서 걔네가 혼비백산 중일 거라 말해도 소용없다. 여기저기 꺅 꺅 소리 그칠 줄 모른다. 곤충 채집하고 개구리 뒷다리 잡고 담장 돌 틈으로 숨는 뱀 꼬리 잡아당기며 놀던 시골 출신 선생님은 이해가 안 간다.

깨달음 다섯: 너희들은 모든 게 처음이구나.


텐트 속에서도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밤을 보낸다. 부모님을 떠나 처음 자본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밥을 해보는 것도 국을 끓여보는 것도 최초란다. 이렇게 많은 짐을 들고 어딜 가보는 것도 추위에 떨며 잠든 것도 인생 최초란다. 친구들과 함께 샤워하며 낄낄거리고 바지 잃어버려 샤워실에 갇힌 친구 걱정해 본 것도 첫 경험이다. 밥그릇 들고 이 모둠 저 모둠 동냥 다니고 선생님이 만든 김치찌개 배급받는 것도 너무 재밌단다. 대충 만든 떡볶이가 이렇게 맛있다니 손가락에 꼽는 맛이다. 친구들과 나란히 마시멜로를 노릇노릇하게 구워 입안에서 녹여 먹는 맛은 평생 못 잊겠다. 텐트에서 둘러앉아 선생님과 배스킨라빈스, 369게임하며 인디언 밥 벌칙 줄 땐 왜 그렇게 짜릿한지 모르겠다. 1 급수 수돗물이 맛있어 벌컥벌컥 마신 것도 처음이다. 매 순간이 처음이어서 더 즐겁고 신기하고 감동했다.


깨달음 여섯: 더 끈끈해져 더 사랑하게 된 우리.


밤새 세차게 내리던 비가 새벽녘에 그쳤다. 2일째 일정은 숲 체험으로 진행됐다. 비 그친 폭신한 땅을 밟으며 산책을 하고 밧줄을 타고 통나무를 건넜다. 안전지대, 로우로프, 모하크워크, 차례차례 활동으로 남녀 팀 미션이 주어졌고 아이들은 서로 배려하며 협력해야 문제해결이 됨을 배웠다. 친구의 능력치를 봐가며 서로 당겨주고 잡아주며 하나 됨을 느꼈다. 아이들은 야영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흐르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쉽다 했다. 날 볼 때마다 이런 기회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툭툭 던졌다. 선생님도 같이해요! 선생님 잠 못 자서 어떡해요! 오히려 어른을 챙겨주는 아이들을 보며 그동안의 고생과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야영장을 떠나기 전 지도사 선생님들과 인사를 했다. 세심히 보살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선생님들이 이구동성 그런다.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고 따르는 게 눈에 보여요.”

사춘기 아이들 데리고 고생 많다는 위로도 덧붙였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꿈같은 1박 2일 숲 캠핑이 무사히 끝났다. 교실로 돌아온 아이들은 벌써 날 꼬신다.

“우리 또 가요, 겨울에 갈 거죠?”

“음…. 글쎄….”

“선생님~~”

눈 동그랗게 뜨고 코맹맹이 소리하는 아이들.

그 모습이 귀엽고 예뻐서 또 냅다 던져버리고 말았다.

“너희들 하는 거 보고!”

와~

왜 또 난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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