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속 '부자동네 '

경제교실의 부작용 빈부격차에 대한 단상

by 포롱

“부자동네 얘들은 좋겠다.”

교실로 들어서던 태*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여기 부자 동네가 어딨어?”

“1분단 애들요. 저번 주에 부동산 샀잖아요.”

아이고야 교실에 존재하는 부자동네라니...


올해 6학년 우리반 아이들과 경제교실을 운영중이다. 꿈나라(우리 반 이름) 국민은 매달 직업에 따라 월급도 받고 저축, 주식 투자도 한다. 1년 마무리가 돼가는 요즘 교실에 빈부격차가 심각하다.

매달 두 번의 월급과 배움노트 성과급, 아르바이트해서 ‘드림(우리 반 화폐)’을 차곡차곡 모은 부자 아이들의 통장엔 잔액이 가득 쌓였다.

수천 드림을 모은 아이들은

요즘 돈 쓰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제티, 오예스 등 간식을 사 먹고 배움노트, 두 줄 노트, 알림장 면제 쿠폰을 수시로 산다.

영화관, 농구관람 표 경매에도 참여했다.

일정액은 은행 적금에 돈을 넣어 이자를 챙기고 선생님 몸무게 주식을 사고도 느긋하다.

언젠가 오르겠지 하며 기다리는 여유마저 보인다.

심지어는 지난달엔 친한 친구들끼리 1분단 부동산까지 사서 모여 살고 있다.

“선생님,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이런 거죠? 졸업할 때 돈 남으면 모두 기부할게요.”


영화티켓 경매로 영화관람 하는 아이들


그동안 월급 받아 잘 먹고 잘 쓰던 ‘서민’도 있다.

이들은 저금이나 투자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월급날을 즐겁게 기다리며 지낸다. 통장에 돈은 많지 않지만, 불만은 없단다.

하지만 쥐꼬리만 한 통장 잔액을 보면 혹시나 예상외 지출(벌금)이 생길까 조마조마해한다.

요즈음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며 물가를 자꾸 올리는 대통령(선생님) 담화문에 한숨을 푹푹 쉰다.

1학기 말에 월급 인상 찔끔해 준 게 다인데 뭐가 돈이 넘쳐난다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월급 받아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제티 사 먹고, 컨디션 안 좋을 때 배움노트 면제권 사고, 자리 쿠폰 한번 쓰면 월급은 바닥이 난다.

저 부자 애들은 돈도 안 쓰고 투자도 열심히 하더니 역시! 하지만 안 먹고 안 쓰는 쟤네들 잘 잘 이해가 안 간단다.

친구들아, 지금을 즐겨라, 6학년 1년 짧다!

“일하고 월급 받고 돈 쓰면 사는 인생도 좋잖아요!”


월급 받아 초코파이 간식 사먹는 아이들

선생님에게 특별관리를 받는 ‘마이너스 통장’ 부류들은 한숨이 일상이다.

부동산(자리) 구매는커녕 간식도 못 사 먹는 처량한 신세다.

이따금 선생님 심부름 등 특별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하지만 또 10 등급법에 걸려 거액의 벌금을 내다보면 마이너스 신세를 못 벗어난다.

이러다가 파산 신청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 같다.

“제발 엑스표 관리 좀 해라. 9등급으로 올라가란 말이야!”

협박인지 부탁인지 아리송한 선생님의 잔소리를 들어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놈의 ‘10등급 엑스법’ 때문에 우리 신세가 이렇게 됐다고 원망을 쏟아낸다.

1학기 말에 우리 반 신용등급표에 최하 등급에 걸린 아이들이 많아지자 국민들이 ‘10등급 엑스법’을 만들었다.

매일 해야 하는 과제를 안 해오면 ‘엑스표’를 치고 그 숫자가 일정 이상 늘어나면 한 개에 50드림 벌금을 매기자.

강경론자들의 의견에 다수가 동의하면서 그 법이 통과된 것이다.

벌금 무서우면 열심히 하겠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매일 아침 등교해서 세줄 쓰기를 하고, 수업내용 노트에 정리하고, 30분씩 독서 후 독서록 쓰는 게 정말 어렵다.

잘해보고 싶지만 성실함이 말처럼 쉽냐고 하소연한다.

“어휴 나도 답답해요. 빚만이라도 청산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학기말이 되자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락하면서 '10등급 엑스표' 법으로 벌금을 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사회의 축소판 교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대통령(선생님)의 고민도 깊다.

부자들의 흥청망청이 보기 싫어 부동산 경매가를 높이고 면제쿠폰 가격을 올리면 근근이 살아가는 서민들이 아우성친다.

저 신용불량자들 빚 탕감을 해주자니 도덕적 해이가 걱정된다.

마이너스 인생들에 특별 아르바이트 자리도 만들어 주지만 또 한 주 지나면 거액 벌금을 무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경제교실을 시작할 때부터 우려했던 부작용들이 조금씩 보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돈 만능주의를 어렸을 때부터 심어주지는 않을까, 신용불량 빈부격차 좌절 낙인 등의 낱말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속에 되새기는 문구가 있다.

‘교실 속 상황을 배움의 장으로 이끌자.’



결국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무장된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굴러간다.

힘들지만 매일 일터로 나가시는 부모님의 ‘노동’과 ‘책임감’을 바라본다.

행복은 거액의 통장 잔고가 아닌 ‘제티’를 친구와 나눠 먹는 달콤한 정이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건 다시 도전하고 시작하는 ‘희망’이다.


소박한 이 몇 줄의 교훈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으면 하는 게

임기 말 대통령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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