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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Dec 03. 2023

초등동창회를 기다리며

37년만의 만남

1980년 3월 3일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삼천국민학교. 

흰 손수건을 가슴에 매달고 엄마 치맛자락에 숨어 그들을 만났습니다. 

운동장은 한없이 넓었고 느티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하기만 했습니다. 

참새처럼 짹짹이며 우리는 그렇게 한 울타리에 모였습니다.      


여섯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름 석자도 못쓰던 우리가 삐뚤삐뚤 이름을 쓰고 더듬더듬 구구단을 외웠습니다. 

동아전과 표준전과를 뒤적거리며 숙제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더 선명한 기억은 친구들과 함께 장난치고 놀고 싸우던 추억입니다.

향긋한 봄날엔 산으로 뛰어다니며 찔레를 꺾었습니다. 

여름날엔 옷 훌러덩 벗고 

물속에서 하루종일 놀았지요. 

학교 끝나면 들에 와서 일하라는 엄마아빠 호령에도

가방 냅다 던지고 가을 들판을 쏘다녔습니다. 

그러다 배고프면 길가 과수원 사과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뚝 따먹었겠지요. 

그 시절 겨울은 왜 그렇게 길고 추웠을까요. 

고사리 손은 늘 트고 손가락이 얼어 글씨도 잘 안 쓰이던 날들이었습니다. 

친구들 집으로 몰려다니며 

고구마 호호 불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때면

흰 눈이 소리 없이 쌓이며 겨울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몸도 자라고 마음도 자라던 우리가 

친구를 사귀며 비로소 진짜 인생 공부를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게 부족하고 어렵던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풍성했던 유년기는 

함께 했던 동무들 덕분입니다.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며 뿔뿔이 흩어졌던 우리들..

삼천에서 함께 했던 6년이 7번이나 흘렀습니다. 

제각기 자기 몫의 인생을 살아내느라 우린 너무 바빴나 봅니다. 

고향을, 친구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네요. 

어느새 얼굴엔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희끗희끗해졌습니다.

벌써 우리 나이 지천명을 넘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 카톡으로 말을 걸어옵니다. 

확인도 않고 차단을 걸었습니다.

무서운 세상이잖아요.

그랬더니 이번엔 전화가 울립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냉큼 받았습니다. 

“현미야, 나 작은 미화야.”     

잊고 있던 소꿉친구들이 내 삶으로 쳐들어온 순간입니다.       


카톡방이 만들어지고 수십 년 만에 듣는 정겨운 이름들에 가슴이 뜁니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수다가 끝날 줄 모릅니다. 

주섭이와 금희는 앙숙처럼 으르렁 거려도 마냥 귀엽습니다. 

작은 미화와 큰 미화가 쌍둥이처럼 안부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재수와 창규와 광희와 대희가 고향 소식을 전해줍니다. 

남편과 알콩달콩 깨소금을 뿌려대는 미숙이 모습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달리기 잘하던 영숙이가 20대에 큰 다리 수술을 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부산 사는 성섭이부터 춘천에 있는 창훈이까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들이 

그동안 함께 못한 세월을 

매일매일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이야기로 채우고 있습니다.       


예천에서 대구에서 서울에서 예비 모임도 가졌습니다. 

상희 상영이 오헌이 주섭이는 대구에서 만났고 

기호 선주 은영 길호 순정이 홍미화 순익이도 모였습니다.

재수 덕묵이 창규 호섭이 광희 철영이도 술잔을 기울였답니다.  

어느 날 사는 게 힘들다고 푸념해도 내 친구들은 다 받아줄 것 같습니다. 

좀 잘난 척을 해도 꼬찔찔이 흑역사를 알고 있는 얘네들은 콧방귀를 뀔 게 분명합니다.      

40년이 훌쩍 지났는데 왜 우린 엊그제 헤어졌다 오늘 만난 것 같을까요.

국민학교 동창이라서 그렇답니다.

어린 시절을 오롯이 함께해서 그렇답니다.     


‘어쩌면 다시 못 올 삼천국민학교 37회 동창회’

‘어쩌면 다시 못 올’이라는 글귀에 가슴이 쿵 내려앉습니다. 

벌써 우리 곁을 떠난 친구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픕니다. 

‘진작 좀 찾을 걸, 일찍 좀 만날 걸’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다시 못 볼’ 소꿉친구들과의 만남

즐겁게 손 잡아주고 안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쌓인 이야기보따리는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놓아 보지요.

우리 인생을 함께 시작했던 그 옛날 그때처럼

인생 후반기도 함께 하는 시간이 많길 기도합니다.     


친구들아, 너무 반갑다. 

많이 그리웠고 보고 싶었어.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얼굴 보여줘서 고마워. 

너희들이 만들어 온 그리고 앞으로 

함께 꾸려갈 

모든 시간들을 응원한다.       

삼천초등학교 37회 70명의 친구들

정말로 사랑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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