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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Jan 07. 2024

캄보디아 선교사 내 친구

“수정이를 보러 가야겠어.”

망설이지도 않고 두 달 전에 가족 여행지를 결정했다.

소식도 모른 채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왜 갑자기 그녀가 이토록 간절히 보고 싶을까.


공항에는 연말 연초를 해외에서 맞이하려는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캄보디아행 우리 비행기는 환승지 상하이 공항 안개로

도착 예정시각 세 시간을 훌쩍 넘겨 새벽 두 시가가 돼 프놈펜에 도착했다.

아담한 공항을 나가자 저 멀리 그녀가 보인다.

“수정아~”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가.     

 

수정이는 동갑내기 소꿉친구다.

기억 속 나의 유년 시절은 늘 그녀와 함께다.

수정이는 새벽밥을 먹고 우리 집에 와서 놀다가 등교를 했고

먼지 뽀얀 하굣길도 손잡고 나란히 걸었다.

10리도 더 되는 신작로를 따라 놀 거리는 끝도 없이 펼쳐졌는데

수정이가 늘 주도했고 나는 늘 따라주는 편이었다.

코스모스 위 빨간 고추잠자리는 왜 수정이 손에만

그렇게 잡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이서 ‘알 낳고 딸 낳고’를 합창하며  걷다 보면

자포자기 잠자리가 우리 손바닥 위로 또르르 노란 알을 낳았다.

정말 잠자리가 우리말을 알아듣나 봐.

수정이는 뭐든 거침이 없었다.

사나운 사마귀도 냅다 잡아 자기 손등에 난 사마귀를 갉아먹으라고 윽박질렀다.

요즘 말로 ‘걸크러쉬’ 했다.      


고향마을 유일한 양옥집 수정이네 마루는 나의 최애 장소였다.

따뜻한 겨울 볕을 받으며 둘이 나란히 엎드려 숙제를 했다.

전과를 뒤적이며 낱말 뜻을 베끼고

짧은 글짓기를 하다 보면 공책 한 바닥이 순식간에 빼곡해졌다.

책을 읽다가 스스로 잠이 들기도 했던 그 시간이 난 참 좋았다.

수정이네 동화책은 모두 내 차지였다.

역사 관련 이야기, 안데르센 전집은 정말 좋아하던 책이었는데

특히 주몽 책의 신비스러운 유화부인은 참 아름다워

신비한 그녀 모습을 종이에 그리고 또 그렸다.

아버지의 회초리를 피해서 수정이가 우리 집으로 도망쳐 온 다음 날엔

꼭 난 이불 위에 오줌을 쌌다.

엄마는 키를 뒤집어씌워 소금을 얻어오라고 내쫓곤 했는데

내 목적지는 늘 수정이네 집이었다.

수정이 아버지는 엄하신 분으로 소문난 분이셨다.

쭈뼛거리며 문을 열면 아저씨(수정이 아버지는 촌수 상 할아버지뻘 친척)께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시며 꼭 한마디 하셨다.

이번이 마지막 소금이라고 다음부터는 회초리를 들겠다고.

나는 아저씨가 진짜로 회초리를 꺼내 올까 봐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사실은 무서웠다기보다 친구에게 들킬까봐 두려웠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너 하나도 안 변했어. 한 번에 딱 알아보겠어.”

“너도 그대로야. 우리 왜 이렇게 못 본 거야?”

보자마자 친구 손을 잡고 얼싸안았다.

그제야 수정이 옆에 듬직이 서 있는 인자한 표정의 목사님도 보인다.

한없이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호텔 로비에 앉아 친구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너 엄마랑 똑같다.”

“진짜? 에잇!! 정말!!.”

수정이의 반응에 웃음이 나온다.

“어찌 여기서 이래 고생을 하고 있나?”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재밌어.”

간호사였던 수정이가 갑자기 선교사로 진로를 바꾸고

해외에 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수정이답다고 생각했다.

겁도 없고, 하고 싶은 건 한사코 해내고야 마는 친구.

초등 동창 ‘미화’가 만든 쿠키 상자를 꺼냈다.

“벌방 미화가 만든 거야. 너 꼭 전해주래.”

갑자기 수정이 눈이 빨개진다.

“친구들 모두 보고 싶다.”     

친구와의 2박 3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수정이와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자꾸 눈물이 났다.

힘들게 사셨던 부모님의 삶과 얽혀 있던 우리의 성장기가 새삼 서러웠다.

소풍 갈 때면 늘 우리 엄마가 김밥을 싸주곤 했는데

그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잘 챙겨주신 엄마를 못 찾아뵌 게 많이 죄송하다고 했다.

엄마 없이 자라는 그녀에게 우리 엄마는 또 다른 엄마 같았었다며.

아저씨께서 술만 드시면 먼저 떠난 우리 아빠 얘기를 했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졌다.

어릴 적부터 평범치 않았던 친구의 혼란스러운 삶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너무나 선명했고 답이 보였다는 내 친구 수정이.

선교 활동을 하며 하루하루가 너무 축복 같고 행복하단다.

말하지 않아도 수정이의 마음이 읽혔다.

누구보다 내 마음을 수정이가 알듯이 말이다.


37년 만에 열린 동창회 사진첩을 넘기며 깔깔 웃음꽃을 피웠다.

내 짝꿍 재수는 캄보디아 거리에서도 알아볼 것 같다고 박장대소했다.

중학교 때 뜬금없이 한밤중에 나무꼭대기에 올라갔다 쿵 떨어져

병원에 실려 간 기호 머리통은 안녕한지 궁금해했다.

너무나 일찍 우리 곁을 떠난 미정이 얘기를 하며 같은 이유로

힘든 사춘기를 보냈음을 알았다.

프놈펜 달빛 아래 소꿉친구와 속삭임은 따뜻하고 감미롭기 그지없었다.      

두 가족이 함께 저녁 먹는 자리에서 목사님이 대뜸 묻는다.

“진짜 집사람 보려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럼요! 방학하자마자 날아왔어요.”

“너무 대단하고, 감사합니다.”

옆에 있던 남편도 한마디 거든다.

“맨날 말로만 듣던 수정씨를 이제야 뵙습니다.”

둘이 애틋한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너 가고 나면 한동안 허전하겠다.”

“서울 나오면 보면 되지. 그리고 또 올게.”

“나중에 네가 우리 아이들 영어 가르쳐 주면 좋겠다.”

“그래? 퇴직 후에 여기 와서 너랑 살까?”

“진짜?”

너무나 먼 훗날을 그리며 친구 손을 잡아본다.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주려고 우리반 벼룩시장에 산 학용품들.
우리집 보물 창고를 다 털었다.

사실 수정이에게 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고춧가루, 들깻가루, 도토리 묵가루, 볶은 참깨, 참기름, 들기름, 화장품, 아이들 학용품….

트렁크엔 가득 담아 온 것들이지만 뭣보다 주고 싶었던 것은

소꿉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었다.

어린 시절 수정이와 함께여서 더 행복했다.

친구 덕분에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신념대로 열심히 사는 자랑스러운 내 친구.

캄보디아의 모든 아이가 자기 자식이라는 수정이.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그곳에 끝까지 남고 싶다는 그녀.

자꾸 보고 싶을 것 같다.

내 친구 수정아, 늘 사랑해.

그리고 늘 응원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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