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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Apr 21. 2024

'관찰'과 '기다림'의 숙명


아침에 출근해서 잠시 교실을 비웠더니 난리가 났다.

교실 밖으로 다니며 복도와 화장실을 뒤지며 선생님을 찾고 다녔나 보다.

나를 본 아이들이 앞으로 우르르 내 앞으로 달려든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다.

“선생님~~”

“어디 가셨었어요?”

“애들이 막 선생님 안 왔다고 여기저기 찾아다녔어요.”

아이고~~ 선생님 없어도 책 조용히 읽고 있어야지~

그 말을 하려다 말았다.

여덟 살한테 바랄 걸 바라자.


... 1

하교 후 교실에 남아있던 **.

“선생님, 저 좋아하는 친구 생겼어요.”

장난기가 발동한다.

“누구? 선생님한테만 말해줄래?”

귓속말을 한다.

“**와 **, 두 명이예요.”

비밀이라며 나만 알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한다.

장난기가 더 발동한다.

“그런데 그 친구한테 좋아한다고 얘기했어?”
“아니요”

“음~ 나 같으면 표현할 것 같은데.”

** 얼굴이 심각해진다.

며칠 후.

“선생님, 저 반지 가지고 왔어요.”

드디어 **가 표현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 같다.

** 손에 자주색 장난감 반지가 들려 있다.

가지고 오긴 왔는데 용기가 부족한지 우물쭈물거린다.

“빨리 전해줘. **는 지금 도서관에서 책 빌리고 있을 걸?”

“알았어요.”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한참 후 헐떡 거리며 교실로 들어온다.

“뭐래?”

“그냥 몰래 가방에 넣었어요.”

“아이 그럼 안되지. 보는 앞에 줘야지. 누가 줬는지도, 그리고 어쩌면 반지가 있는지도 모를 거야.”

난감해한다.

“용기를 내봐. 감정은 표현하는 거야. 원래.”

부추겼다.

다시 또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헉헉 거리며 교실로 들어온다.

씩 웃는다.

“성공했니?”

“네. 줬어요.”

“뭐래?”

“그냥 주고 바로 뛰어왔어요.”

아이고 귀여워.


... 2

아침 등굣길부터 **가 앞니가 흔들린다고 조잘거렸다.

앞니가 많이 누운 걸 보니 곧 빠질 것 같긴 하다.

“자꾸 혀로 밀어. 그래서 자꾸 더 흔들리게 해 봐.”

급식시간,

밥을 먹는데 불편한가 보다.

“앞니 건드리지 말고 양 어금니 쪽으로 밥 먹으렴.”

영 불편한 기색이다.

그런데 밥 먹던 **가 갑자기
“선생님~~~ 저 이빨이~~”
아이 앞으로 앞니가 툭 떨어졌다.

순간 웃음이 났다.

갑자기 앞니에 구멍이 뻥 뚫렸다.

피도 뚝뚝 떨어졌다.

엄지 손가락을 세워주고는 얼른 휴지를 가져다줬다.

잘했다! 대단해!

빠진 이빨은 고이 싸서 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다.

나 어렸을 적엔 지붕 위로 던졌는데(새가 물어가서 새 이빨 갖다 준다고 했다)

이 아이들은 어디로 던져야 하나?

그런데 친구의 빠진 이빨 보려고

여기저기서 소동이 일어났다.

우르르 몰려와 이빨 보자며 난리다.

혼자 이빨을 뺀 친구가 대견한 건지

아님 자기도 이빨 뺐던 경험이 생각나서인지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입 다물 어야 해’ ‘자리로 돌아가렴’ 손가락 입에 갖다 대며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씩 웃는 아이들

앞니가 거의 다 빠져있다.


... 3

1교시 수업에 외부강사 수업이나 무용, 소고 수업이 많다 보니 책을 읽어줄 수 있는 날짜가

이틀밖에 안됐다.

이번 주 읽어준 책은 **가 가져온  '배운다는 것은 뭘까'

질문을 던지고 생각해보게 하는 그림책이다.

학교 입학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안성맞춤 책이었다.

"학교에 입학해서 너희들은 무얼 배우고 있니?"

물으니

글자요, 숫자요, 규칙요.... 많다.

"누구한테?"

"선생님한테요. "

"나만 가르친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

한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요, 책에서도 배워요.'

그림책을 읽어준다.

배운다는 건 뭘까?

궁금한 게 생기면 묻고,

곰곰이 지켜보고,

귀를 쫑긋 세워서 잘 들어보고,

친구가 하는 멋진 행동을 따라 해 보고,

닮고 싶은 누군가를 찾아보고...

배운다는 것이 뭐를 알게 되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자존감을 키우는 것),

잘 모르는 친구에게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배려심과 사회성)도 배움이라고 했다.

며칠 전 옆 친구가 자기 걸 자꾸 본다고 했던 **를 쳐다보며

이야기해본다.

친구가 나의 행동을 내가 한 작품을 따라 해보는 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라고.

"너희들은 지금 뭐든 보고 해보고 하는 배우는 시기거든.

선생님한테 보다 친구에게 사실 더 많이 배운단다."

시험 볼 때만 말고 내 것 열심히 보여주고 친구 것 열심히 보자 했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옛날이야기 '금 달걀을 낳는 암탉' 이야기는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물었다.

욕심쟁이 정승이 암탉을 뺏어갔더니 그 후론 왜 금 달걀을 못 낳았을까?

역시 아이들 다운 대답들이 넘쳐났다.

이제 닭이 늙어서 황금을 못 낳아요.

농부가 몰래 암탉을 바꿔서 줬어요.

욕심쟁이라서 암탉이 금 달걀을 안 낳아준 거예요.

거짓말해서 벌 받은 것 같아요.

농부는 착해서 좋아하고 못된 정승은 미워서 그래요.

고리타분할 것 같아 아이들이 재미없어하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아이들에게 이야기는 어떤 얘기도 반응이 좋다.  


... 4

오늘로 모음 공부가 끝났다.

마지막 ‘으’ ‘이’를 배우는데 쉽다며 난리다.

세종대왕께서 땅(ㅡ) 사람( l ) 태양( ●) 세 가지를 가지고 한글을 만드셨다는 얘기에

땅과 사람만 있으니 줄만 옆으로 아래로 쭉 그으면 된다며

자신감 가득이다.

동시책에서 ‘으’ ‘이’를 찾아 동그라미 치고

동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 본다.

천사점토로 '으' '이'를 만들어 보고 큐브로도 만들어본다.

‘으’ ‘이’가 들어간 낱말도 찾아본다.

“선생님이 쓰는 글자를 눈으로 쳐다보고 소리 내어 읽으렴.”

책을 펼 때마다

“못 찾겠어요.” “없어요.”하는 친구들이 많다.

아직도 손이 야물지 못해 책장 넘기는 것도

페이지 숫자 읽는 것도 익숙하지 못해서 그런다.

다른 학년에서는 일상이던 것도 1학년에게는

버거울 때가 많다.

교사의 숙명은 '기다림'이다.


... 5

한때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자랑했던 적이 있다.

비주얼은 좀 힘들고

목소리가 좋으니

라디오 아나운서 시험 한번 보라고 꼬셨던

선배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배와 라디오 입사 시험을 봤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말로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니

성대가 많이 혹사당했단다.

감기 뒤끝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 병원엘 갔더니

성대결절이란다.

이래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잠긴 소리가 많나 보다.

마이크의 도움을 받아 소곤소곤 얘기를 하곤 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을 많이 안 할 수가 없다.

되도록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되야겠구나

또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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