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한 '현미밥과 밥알들'

내일 문집 배달... 졸업 앞두고 마지막 이벤트

by 포롱
“선생님, **와 **, **는 완전 상습범이에요. 꼭지마다 글이 계속 없어요.”

방학 중에 문집 작업 도우러 온 윤슬이가 걱정 어린 한마디를 던졌다.

맞다. 몇 녀석들이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갔다. 누굴 탓하랴. 꼼꼼히 체크 못 한 내 탓인걸.

“전화해서 써서 보내라고 하셔요.”

“연락 두절이야. 문자도 전화도 불통이야.”

“졸업 때까지 문집 완성될까요?”

“걱정하지 마. 선생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중학교 배정통지서 받는 날.

방학 중인데도 아침부터 아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한다.

기다리던 뺀질이 **가 교실 문을 열고 씨익 웃는다.

약이 바짝 오를 대로 오른 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 걸어본다.

“**님? 연락이 너무 안 되던데요. 어디 장기 해외여행 다녀오셨나요?”

“네? 아닌데요.”

“으흐흐!! 그러셔? 그런데 왜 그렇게 선생님과 연락이 안 됐지? 내가 얼마나 너를 애타게 찾은 줄 알아? 주제 글쓰기도 빈약하고 두 줄쓰기도 몇 개 없고, 미션 9개는 텅텅 비었고….”

“아…. 그게….”

능글능글 웃는다. 그래? 너 계속 웃을 수 있는지 보자.

“중학교 배정통지서 받고 싶지? 이거 받아서 중학교 등록해야 입학할 수 있거든? 그런데 어쩌냐. 펑크 난 글 다 써야 배정통지서 줄 거야. 받고 싶거들랑 얼른 지금 종이 위에 다 쓰렴.”

저 황당해하는 표정 아, 쌤통이다.

“헐~~ 쌤~~ 그런 법이 어딨어요? 그럼 중학교 어디로 배정됐는지만 알려주세요.”

“싫다. 다 쓰면 통지서 줄게. 얼른 써라.”

“중학교 입학 등록 해야 한다면서요. 빨리 받아서 등록해야 중학교 간다면서요.”

“응. 괜찮아. 내일까지 등록이야. 얼른 앉아서 써.”

연필과 종이까지 쥐여 주며 재촉했다.

뒤이어 나타난 @@도책상에 주저앉혔다.

“@@야, 넌 미션 5가 없더라. 저기 **옆에 가서 써라. 장난처럼 몇 줄 쓰지 말고 진지하게 써라. 안 그럼 퇴짜 맞는다.”

짓궂은 친구 녀석들 배정통지서를 휘날리며 외친다.

“그래, **야 @@야, 할 건 해야지. 왜 선생님을 힘들게 하니? 우린 중학교 먼저 간다.”

순식간에 빼곡히 글이 채워진다. .

“선생님, 여기요. 저 잘했죠? 이 정도면 만족하시죠? 이제 통지서 주셔요.”

“이렇게 잘하는 것을! 그래, 고생했어. 자, 여기!!”

“야호!”

그렇게 문집에 펑크 났던 글들은 중학교 배정통지서를 미끼로 모조리 다 채워졌다.


우리반 문집 ‘현미밥과 밥알들’. 무려 두 달이 훌쩍 넘게 걸린 긴 프로젝트, 우여곡절이 많았다. 12월 초 학급회의에서 문집을 만들지 말지를 두고 투표에 부쳤더니 의외로 반대 의견이 5표나 나왔다. 귀찮고 힘든데 그런 걸 왜 하냐며 몇 아이들의 반발이 상당히 컸지만, 다수의 아이는 문집을 원했다. ‘현미밥과 밥알들’ 문집 제목이 정해졌고 편집위원을 자원받았다. 위원들이 정해지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설문 조사, 10대 뉴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등 아이템이 결정되고 역할분담에 들어갔다. 모든 반 아이들은 자신의 글쓰기 노트를 보며 자신의 글을 골라 한글 작업에 돌입했다. 문집 인쇄비용 마련을 위한 벼룩시장, 설문 조사, 추가 글쓰기 미션까지 하느라 아이들은 방학 직전까지 바빴다. 방학 틈틈이 편집위원들이 번갈아 등교해 내 일손을 도왔고 그 결실이 내일이면 아이들 손에 전달된다.

KakaoTalk_20240207_195755638.png 윤*이가 디자인한 문집 뒷표지.

무언가를 한 권 펴낸다는 건 생각보다 시간과 정성이 꽤 든다. 나 자신은 물론 아이들까지 다그쳐가며 난 또 왜 180쪽이 넘는 문집을 만들었을까. 6학년 아이들에게 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는 이 하나 없는 중학교로 입학했던 나는 불안과 긴장과 눈물로 3월을 보냈다. 그럴 때마다 꺼내 보며 마음을 달랜 것들이 바로 6년 동안의 기록들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도 아닌 한 장 짜리 졸업사진과 선생님의 편지 등 초등학교의 작은 흔적들이다. 친구들과의 일상이 담긴 일기장을 보며 그들을 그리워하며 웃음 지었다. 빼곡한 추억의 힘으로 낯선 곳을 견뎠다. 중학교를 떠나 더 큰 중소도시로 고등학교를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중학교 앨범을 친구들과의 정표를 꺼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처음보다 두 번째가 쉬웠다. 좋은 기억들은 마음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기억 속 또렷한 친구들과 선생님은 든든한 응원군이었음이 분명했다. 2023년 영문초 6학년 우리들의 소중한 기록도 그럴 거라 믿는다. 분명 아이들이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움츠린 어깨를 쫙 펴게 할 것이다.


갓 지어낸 ‘현미밥과 밥알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따끈하다.

내일 이걸 받아 든 아이들의 표정이 어떨지 너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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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집 제목도 아이들이 스스로 지었다. 다수표를 얻은 '현미밥과 밥알들'이 문집제목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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