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에게 2월은 헤어짐이 슬픈 달이다. 1년 정들었던 아이들을 새로운 학년으로 올려 보내고 함께 울고 웃었던 동료들과 이별의 시간이다. 교직을 천직이라고 믿는 나지만 요맘때는 늘 싱숭생숭한 마음과 우울감으로 힘들다.
하지만 아쉬움과 서운함을 말끔히 털어버리고도 남을 선생님들과의 마지막 추억.
졸업식의 여운을 가득 안고 경기도 양평으로 1박 2일의 배낭을 꾸렸다. 한 사람은 일정을 짜고 누군가는 맛집을 검색하고 어떤 이는 준비물을 나눠 가방 무게까지 배려한다. 옆에서 ‘잘한다’, ‘최고다’ 칭찬의 말과 어깨 두드려주는 선배도 있고 뒤늦게야 뭐라도 챙겨보려는 마음을 보태는 어리바리 나 같은 부류도 있다. 이런 환상의 팀워크로 1년을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 채웠음을 새삼 느꼈다.
매사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는 직업 탓일까.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볼 것, 먹을 것, 해볼 것이 골고루 배합된 여행 일정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두물머리의 핫도그도 기대되고 겨울 용문사 은행나무도 보고 싶다. 마니또(비밀친구) 공개는 아마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 같다. 방학 전에 서로의 비밀친구를 뽑았고 두 달이 넘게 고심해 가며 선물을 골랐다. 그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또 무얼 해주면 행복할지를 생각하며 관찰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참 즐거웠다. 카톡 얼굴 사진도 훔쳐보고 인스타그램도 엿봤을 것이다. 비밀친구의 평소 대화에 집중하며 그녀의 무심한 말 한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각자 가방 속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비밀친구를 위한 선물꾸러미. 서로의 마니또는 누구일까. 모두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양평역까지 가는 차 안에서부터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제야 밝히는 사건 사고 후일담에 깔깔거렸다. 순식간에 서울을 벗어나니 시원한 강과 산이 펼쳐졌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황태해장국 식당 앞에서 “30분 전에 도착해 영업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아침밥 안 주냐며?”라며 전화로 주인에게 영업 개시를 종용했다. 허둥지둥 내려와 뜨끈한 국밥을 내주시는 주인장께 밑반찬 마저 환상적이라며 엄지 척 해줬다. 두물머리를 산책하며 흐린 날씨는 사진이 잘 나온다며 연신 휴대전화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먹는 바삭한 핫도그라니!! 중년을 훌쩍 넘긴 50대들과 한참 육아에 바쁜 30대, 이제 갓 교직에 입문한 20대 막내 선생님들이 세대를 초월해 여행을 즐겼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두꺼운 이불속으로 비밀 선물을 모두 밀어 넣었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이게 누구를 위한 선물일까? 누가 이 선물을 샀을까? 이유를 들어가며 얘기하는데 예상치 못한 추측과 이야기에 배꼽을 잡았다. 방학 동안 읽고 또 읽어 엄선한 두 권의 책이 나왔고 고급스러운 머리띠와 목욕용품도 등장했다. 모자 양말 장갑으로 함께 산과 들을 걷자며 꼬시고 귀한 발사믹 소스를 구해오기도 했다. 밤 늦도록 썼다는 손편지, 유기농 차, 바르기만 하면 주름이 싹 펴진다는 스틱 화장품 등으로 마음을 나누는 감동의 순간들로 두 시간이나 흘렀다.
이불속에 마니또 선물을 숨겼다. 선물을 개봉하며 누구를 위한 선물이고 누가 준비를 했을까를 맞추는 과정은 즐거웠다.
고심끝에 준비한 선물들. 나를 위한 선물은 바로 이거야, 엉뚱한 선물과 마니또를 고르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산 좋고 물 좋은 풍광을 품은 숙소에서 포도주잔을 기울이며 밤늦도록 얘기꽃을 피웠다. 그러다 누가 먼저 시작했을까. 20분짜리 홈트레이닝 동작을 너무도 진지하게 한다. 달밤에 체조는 딱 요럴 때 쓰는 말이다. 내친김에 젊은 선생님들에게 댄스 레슨을 받기로 했다. 국가대표급 몸치인 나는 생전 처음 해보는 K-POP 댄스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 유튜브를 보고 따라만 하면 되는데 손발이 따로 놀고 어정쩡한 자세가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러다 거실 유리창에 비춘 허우적대는 우리 모습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 새벽녘에야 잠이 든 우리. 첫 만남부터 좋은 사람들임을 직감했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아 매 순간 감사한 마음으로 지냈다. 수개월 전부터 계획한 선생님들과의 마무리 여행은 앞으로의 만남이 더 기대되는 추억으로 남았다.
23 ‘소공녀’(소중한 공주들과 여인들)
우리 모임 이름처럼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라는 말을 생각하며 귀한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진심인 귀염둥이 1반쌤, 빈틈없이 완벽한 2반쌤,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발 뒷꿈치마저 예쁜 3반쌤, 그리고 나의 든든한 친구이자 버팀목 6반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대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