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등교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아이가 대뜸 던진 한 마디. 아, 이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오만 생각이 스친다. 이 나이에 예쁘다는 말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첫인사치고 대담하고 재밌다. 혹시 만만해 보인다는 말일까. 첫만남부터 기 싸움에서 밀리고 있나?
-그래? 좋다는 말이지? 고마워.
쭈뼛거리며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어서 와, 반가워! 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원래 이렇게 작은가? 마음속으로 그려본 12살보다 한참 어리고 귀엽다. 재작년 1학년을 가르치다 작년에 6학년으로 점프했다. 첫날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변성기 중저음 아저씨 목소리, 불쑥 솟아오른 여드름을 마스크로 가린 채 산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던 아이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느라 몸에 힘이 자꾸 들어갔다. 5학년? 졸업시킨 제자들과 비슷한 수준이겠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너무 어리고 귀엽다. 궁금한 건 못참고 조잘조잘 말 많은 아이들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 막 4학년에서 올라왔네.
행복하세요?
-딱딱한 소개 준비했지만, 너희들이 궁금한 걸 대답해줄게.
긴장되고 경직된 분위기가 싫어 질문을 적은 종이를 막 구겨 공을 만들어 던지라고 했다. 금세 얼굴이 밝아지고 발랄해졌다. 종이 위 질문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이걸 쓴 아이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적었을까.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선생님은 참 행복한 사람 같아요.
첫 날 소감문을 읽다가 걱정과 불안이 사르르 녹았다. 나와 인연을 맺은 아이가 나의 표정에서 나의 말투에서 행복을 봤다면 제법 성공적인 첫 단추를 끼운 것임이 틀림없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낯선 새 학기에 행복한 사람을 만났다면 그 아이도 분명 한해를 따뜻한 기억으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선생님은 자가예요? 전세예요?
첫만남에서 이런 질문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 것 같은가. 적잖이 당황하지 않겠나. 하지만 나는 웃었다. 학생들도 교실 곳곳에 붙어있던 세금, 신용평가, 주식 등의 환경게시물을 보고 눈치를 챘을 것이다. 올해 경제교실을 하겠구나. 한 한기, 한 달 프로젝트로 경제공부를 했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이 꽤 있다.
-그래? 그럼 올해는 1년 프로젝트로 해보자!
힘들어 쓰러져도 내 자신을 믿고 자신의 꿈을 찾자. 우리반 이름은 ‘힘내자’로 정해졌다. 사이다처럼 시원하고 탕후루처럼 달콤한 ‘사탕’나라, 5-5 어린이날과 같은 순수하고 밝은 어린이나라, 은처럼 빛나고 별처럼 반짝이는 은별나라 등 쟁쟁한 후보군을 당당히 제쳤다. ‘힘내자’반의 화폐 단위도 ‘파워’로 결정됐다. 이제 우리는 매달 몇백 파워씩 월급을 받고 학교 다닌다. 돈 벌 생각에 아이들의 얼굴 가득 기대로 찼다.
*저는 이 과자 싫어해요. 선생님 드세요.
등교한 **이가 과자 한 봉지를 수줍게 건넸다. 어제 선생님은 과자를 좋아한다는 말 귀담아들었나 보다. 체육관에서 상품으로 받았는데 자기는 이런 맛을 싫어한다고 선생님 드시란다. 응, 그래, 오다가 주웠다고 안 한 게 어디냐. 선생님과 친해져 보고자 하는 마음이 읽혀 냉큼 받았다. 쉬는 시간 주위를 뱅뱅 돌며 말을 거는 아이들도 보인다. 선생님, 집은 어디예요? 선생님, 나이는 몇이에요? 선생님은 어는 과목이 제일 좋아요? 그래, 그래 우리 하나씩 서로 알아가며 친해지자.
24개 감자 이야기 이제부터 써볼까?
첫 수업은 감자 프로젝트로 문을 열었다. 고만고만한 6개의 감자 중의 하나를 집는다. 친구들과 감자의 이름도 정해주고 생김새를 그려보고 첫 탄생의 순간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모둠별 이야기를 만들었다. 빼곡이 써 내려가는 아이들의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야. 감자량 작별인사하렴.
떨어지기 싫은가보다. 집에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묻는다. 실물화상기에 여섯 개의 감자를 모아보여준다. 내 준에 똑같은 그저그런 감자로 보인다. 한 명씩 불러 너희들의 ‘감냉이’ ‘강자’ ‘포테토칲’ ‘감자새’ ‘동글이’ ‘감자돌이’를 찾아보랬더니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집었다. 아이들은 미묘한 크기 차이, 색깔, 새까만 점, 작은 상처 등도 눈여겨보고 기억했다.
-한 시간을 만난 감자도 이렇게 마음을 주니 정이 들고 좋아졌지? 이름을 불러주고 관찰하고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주니 그냥 ‘감자’가 아니라 의미있게 다가왔어. 짧은 만남의 감자와도 헤어지기 싫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떨까? 1년 동안 24명과 즐겁고 재밌고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주자. 분명 우린 평생 기억할만한 좋은 친구들이 될거야.